• 동아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란에 이 신문 황호택 논설위원이 쓴 '막차의 꼭짓점 댄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갈치 아지매’ 광고를 만들어 노무현 후보 띄우기에 기여했던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 조광한 씨는 지금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 적을 두고 있다. 그는 노 정부 초기에 대통령에게 건의할 언론 정책을 다듬느라 매일같이 언론인들과 조찬(朝餐) 약속을 잡았다.

    의욕에 넘치는 활동을 하던 그가 몇 달 안 돼 청와대를 나왔다. 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인 문희상 씨 계보에다 ‘자갈치 아지매’ 공훈이 혁혁한 그가 청와대에서 밀려난 것은 뜻밖이었다. 그 뒤 조 씨를 국정홍보처 차장으로 보내는 안이 청와대 인사위원회까지 통과했으나 노 대통령이 “광한이는 봉급 많이 받는 좋은 자리로 보내 주라”며 퇴짜를 놓았다. 그는 한국가스공사에 낙하산 감사로 내려갔다가 스스로 임기를 채우지 않고 미국 공부 길에 올랐다.

    노 대통령에게는 몇 개의 꼭짓점이 있다. 강남 부동산 때리기, 평등교육, 과거사 규명, 주류(主流) 언론 적대, 부산 경남(PK) 소수파 정치세력화…. ‘언론 개혁론자’들로 가득 찬 청와대에서 조 씨는 거의 혼자 ‘유연한 언론 대책’을 거론했다. 그러나 꼭짓점과 어긋난 대(對)언론 태도가 노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까닭임을 그는 한참 뒤에 알게 됐다. 장관이나 대통령비서관들이 꼭짓점 동작을 따라하지 못하면 조 씨처럼 꼭짓점 댄스의 피라미드 대열에서 떨려 나는 수밖에 없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노무현 후보의 자문그룹에 일찍 참여했고, 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노 정부의 위기 원인은 궁극적으로 인사 실패가 제일 크다”고 말했다. “청와대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이렇게 된 것은 수석비서관 급을 다 만만한 사람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모두 예스맨들로 채워진 탓이 크다…참여정부 1년차가 지나면서 갈아 넣기 인사밖에 안 됐다.”

    어느 교수는 이전 정부까지는 대통령비서관들을 만나 국정 현안의 속사정을 들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청와대에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서 교수의 표현대로 만만한 사람들만 모아 놓았기 때문일까.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만만한 예스맨’을 정부 각료로 ‘갈아 넣기’ 하려다 실패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의 권력 핵심부 줄 대기가 한창이다. 다음 정부에 참여할 능력과 여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수록 이번 버스를 놓치면 영영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대통령의 꼭짓점에 맞추어 기자들 앞에서 막말을 하고 인터넷에 공격적인 글을 올리기에 바쁘다.

    박남춘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호흡이 맞는 인사의 기용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이다. 신문사 편집국장이나 방송사 보도본부장은 코드 인사 안 하느냐”고 꼭짓점의 각(角)을 세웠다. 집권 후반기에 대통령의 국정이념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쓸 수밖에 없다고 부드럽게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버스를 타고 친정 해양수산부에 금의환향하고 싶었던지 언론을 들이받는다.

    필자는 어느 장관 내정자와 장관 취임 두세 달 뒤 월간 ‘신동아’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을 잡아 놓았다. 취임 3개월이 지나자 그가 난색을 표했다. 그도 ‘청와대의 꼭짓점’에 관해 알게 된 것 같았다. 문화예술계 출신으로 언론에 대한 이해가 깊은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웠다. 솔직히 요즘 정부 인기가 바닥이라 장관 인터뷰가 별로 관심을 못 끈다는 말을 해 줬다.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 거부 선언을 했다. 어쨌거나 ‘마약’ 운운은 좀 심했다. 이 수석도 신문기자 시절에는 그쪽 코드로 생각되지 않던 사람이다. ‘고교 교장’(박정희)보다 윗길인 ‘대학 총장’ 대통령 모시고 꼭짓점 댄스를 추자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을 것이라고 짐작은 간다.

    꼭짓점 댄스의 흥이 오르면 빈자리를 채운 막버스는 금세 종점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무사고 운전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