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시각'란에 이 신문 조용 편집국 부국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 이후 불거졌던 ‘친(親)박근혜’ 대 ‘반(反)박근혜’진영간 내부갈등은 이재오 최고위원의 18일 당무복귀로 일단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내분 폭탄을 떠뜨릴 수 있는 불씨는 여전하다. 이번 일로 양 진영의 피아 구분이 보다 분명해지면서 내막적으로는 한층 치열하고도 집요한 대권 예선전의 막이 오른 셈이다. 실제로 이 위원은 “특정 인맥의 전횡으로 대선후보 공정경선이 어려워졌다”면서 중앙당은 물론 시·도당 사무처 당직자들을 중립적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일의 발단이 경선 막판 이 위원을 겨냥한 박근혜 전 대표의 전면 공세에서 비롯됐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결국 강재섭 후보는 여론조사에선 3위에 그쳤지만 박 전 대표의 영향권 아래 있는 대의원들의 몰표 덕분에 대표에 당선됐다. 반면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한 이 위원은 2위로 밀렸다. 엄정중립 원칙을 깨고 경선과정에 직접 개입한 박 대표로선 이기고도 진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31 지방선거 압승의 주역인 박 전 대표가 당내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벌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에서 설사 먼저 도발해왔다 해도 공식적 선전포고가 아니라면 너그럽게 받아넘겼어야 했다. 그게 앞선 자의 도량이다.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진행되던 편들기에 정색을 하고 강경대응, 완연한 패싸움으로 만든 건 박 전 대표의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얼마전까지 매일 얼굴을 맞대고 당무를 협의했던 이 위원을 향해 자신의 지지자들이 색깔론을 펴도록 방치한 것도 사려깊지 못한 처신이었다. 이는 “그렇게 잘 모셨는데 배신 아니냐”는 반발과 ‘수구 지도부’운운하는 역공의 빌미를 줬다.

    이번 일로 박 전 대표의 독특한 리더십이 새삼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2세 정치인치고는 자기 절제력이 아주 뛰어난 편이다. 반대파들도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하지만 부친의 문제와 관련해 비판을 받으면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일거에 인내심을 잃고 직정을 토로하곤 했다. 이번에도 2년전 부친의 유신독재를 공격했던 이 위원에 대한 ‘묵은 감정’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가 돈과 술로 상징되는 스킨십 계보정치와 과시형 정치행태에 체질적 거부감을 보이는 걸 보면 전형적 여성 정치인 같다. 반면 테러 당시 얼굴 봉합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대전 판세를 물어봤다는 전언에 따르면 웬만한 남성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강렬한 권력의지의 화신이 분명하다. 이같은 양면성은 부친의 집권기간 영광의 18년과 그 이후 1997년 정계입문 때까지 좌절의 또 다른 18년을 거치면서 권력의 생리와 염량세태를 뼈저리게 체험한 특이한 인생역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박 전 대표는 분명히 승자다. 그간 여러차례 작은 전투에서 이를 악물고 싸워 연전연승한 덕분이다. 문제는 내년의 큰 전쟁이다. 대선은 당내 경선이나 재·보선은 물론 총선이나 지방선거와도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도 그는 앞으로 모든 전투를 빠짐없이 싹슬이한 뒤 그 여세를 몰아 전쟁까지 승리하려 작심한 듯하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대단히 어려운 길이다. 전투에서 이길수록 전쟁의 적군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도 4년여 선두를 질주하다가 막판 몇개월을 남겨두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추월당했다.

    박 전 대표는 나중에 크게 이기기 위해 지금 작게 질 줄 아는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남다른 자제력을 갖춘 박 전 대표의 리더십 변신을 기대해 본다. 조용 /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