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세대가 옳다고 하면 386세대가 반대를 하고 386세대가 옳다고 하는 것은 보수세대가 반대를 하는데 이런 대립의 정치는 옳지 않다. 386 세대는 보수세대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보수세대는 386세대를 아들처럼 사랑해라”

    '조선왕조 500년'과 '한명회' 등 역사극으로 유명한 방송작가 신봉승씨가 13일 오후 21세기분당포럼 초청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념 대립과 편가르기 등이 가져오는 국력소모를 줄이고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펼 것을 주문했다. 


    신씨는 경기도 성남 분당 새마을연수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역사 속의 지식인과 나라의 미래’라는 주제로 노무현 정권의 문제점을 역사와 비교,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보릿고개가 없어진 지 30여년 만에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양극화, 이념대립 등 어려운 현실에 처한 이유가 ‘잘못된 정치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일본 동경대에서 93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7책이 14일 외부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신씨는 매일 100페이지씩 만 4년간 읽어야 끝마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이 실록을 9년 만에 완독했다고 했다. 

    신씨는 우선 “조선왕조가 망하지 않고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왕조실록과 권력의 상층부가 건재했기 때문”이라면서 “세종대왕이 ‘정치를 잘하려면 지나간 시대 치란(治亂)의 자취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책에는 나라의 흥망성쇠 원인과 결과 등이 명확하게 쓰여져 있는데 그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 시대가 잘 흘러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470년 전인 중종 12년, 4월4일 홍수가 나자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원인을 물었다. 그러자 신하 중에 한 사람이 ‘임금이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에 하늘이 노한 결과’라고 직언했다. 이에 기가 막힌 중종이 정치를 잘하는 방법을 되묻자 ‘군자와 소인을 잘 구별하면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일화를 예로 든 뒤 노 정권의 인사시스템 난맥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근본적으로 식견과 표준이 있어야 한다”면서 “조선시대 임금은 실록을 볼 수 없도록 법률로 정해놨다. 7명의 사관을 죽이면서 연산군이 이를 보려 했으나 결국 보지 못했다. 이게 조선의 지식인 집단이었다. 조선왕조가 완벽하게 남겨놓은 기록의 역사를 왜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받지 못했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장∙차관이 된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해 놔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국무회의 기록이나 장관회의록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며 “지금껏 장 차관들이 국무회의에서 정사에 책임을 지기 위해 ‘우리가 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지식인 사회가 건재하지 않다는 것, 즉 역사인식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신씨는 또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초중고교생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가 없다. 올바른 국사를 한 줄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행정고시 시험을 본다는 게 말이 되느냐, 과연 이러고도 이들이 후세에 국가의 정체성과 21세기 국가의 진로를 논할 자격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식 커리큘럼이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의 일기를 보고 잘못 쓴 부분을 고쳐주는 것이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발상이 과연 옳은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올바른 국사를 가르치고 역사를 깊이 이해하느냐의 여부가 국가 정체성의 유무를 나타낸다”며 “역사를 모르는 아이는 대한민국 아이가 아니라 남의 나라의 아이가 되는 것이다. 국가가 대한민국의 문화환경을 조성해서 아이들이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한류열풍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 정서를 정직하게 드러내면 한류가 된다”며 “한류를 의식한 문화콘텐츠는 백발백중 망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의 방송시스템이 시청률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작품성이 결여된 드라마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강연을 마치면서 그는 “역사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상 부정은 당시에 밝혀지지 않으면 손자 때 가서도 밝혀진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