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5·31선거 나는 이렇게 본다'란에 김호기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중도개혁의 실패'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 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두 달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문제다. 한쪽에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네 번째 지방선거가 진행됐다. 다른 한쪽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 역시 뜨거웠다. 지방선거가 지방화를 상징하는 꽃이라면, FTA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생생한 현장일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지방화와 세계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논란을 이룬 교육 문제의 경우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자립형 사립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평준화 유지, 경쟁력과 형평성을 결합하려는 거점 명문고가 주요 쟁점이었다. 또 다른 논란이 됐던 용산 프로젝트의 슬로건도 ‘신도심 세계도시 서울플랜’이었다. 교육이든 경제든 지방자치의 의제도 이제는 경쟁력과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와 긴밀히 결합돼 있다.

    이번 선거는 이른바 ‘1987년의 시간’과 ‘1997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1987년의 시간이 ‘민주화의 시간’이라면, 1997년의 시간은 ‘세계화의 시간’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의 시간과 세계화의 시간이 중첩돼 흘러 왔다. 전자의 목표가 실질적 민주주의에 있었다면, 후자가 부여한 과제는 세계화의 한국적 수용에 있었다. 적어도 2002년 대선에서는 민주화의 과제가 세계화의 과제보다 더 중요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가 참여정부의 등장이었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탈권위주의, 권력기관 독립, 사회갈등 조정 등은 민주적 개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세계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참여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으로 이에 맞서 왔다. 하지만 비정규직 증대, 국제금융자본 영향력 증가, 사회적 양극화 강화 등의 세계화가 가져온 과제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세계화에 대한 곤혹스러움이 담겨있는 말이 이론적으로 형용모순이나 현실적으로는 존재하는 ‘좌파 신자유주의’다.

    세계화의 충격은 국민의 의식과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3년간 국민 다수의 관심은 민주화보다는 성장, 일자리, 조세, 복지, 양극화 등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민주화 20년을 결산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라는 여우를 피하고 나니 돌연 세계화라는 호랑이를 만난 형국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이번 선거의 결과는, 길게는 지난 8년간 국정을 담당한 중도개혁세력에 대한 중대 경고다. 보수세력이 선전했다기보다는 중도적 개혁에 대한 회의와 실망이 반영된 ‘항의투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어느 나라건 중도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에는 성장을 중시하는 그룹과 개혁에 무게 중심을 두는 그룹이 공존해 있다. 중도개혁세력이 정치적 다수가 되기 위해서는 성장동력 확충과 양극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 상당수는 이번 선거를 통해 이 둘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도개혁세력의 역량이 취약했다고 엄중히 중간평가한 셈이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와 같은 세계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전면 개방 또는 전면 거부의 이분법을 넘어서 세계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창의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앞으로 전개될 정치적 경쟁에서는 ‘어떤 세계화’를 추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주요 전선(戰線)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전선은 구식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아니라 미래 비전과 정책 대결을 중심으로 형성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정치적 경쟁 구도에서 보수든 중도든 진보든 더 이상 프리미엄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중도개혁세력에 대한 엄중한 평가는 보수세력 내지 진보세력에도 언제든지 행해질 수 있다. 국민 다수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삶의 질의 향상이자, 이에 대한 거시적인 비전과 구체적인 대안이다.

    미래 비전과 대안이 부재한 정치 세력은 더 이상 생존해 나가기 어렵다. 바야흐로 우리사회는 산업화 시대 30년과 민주화 시대 20년을 결산할 지점에 도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