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란에 이 신문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제 잔치는 끝났습니다. 두 분 정말 수고 많이 하셨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많은 낙선자가 있지만 두 분의 선전과 아름다운 패배, 그리고 깨끗한 승복은 우리 선거사의 한 페이지에 소중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특히 72시간 마라톤 유세를 완주한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와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소속 정당 탈당의 유혹을 뿌리친 진대제 경기도지사 후보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번 5·31지방선거는 후보들의 개별 경쟁력이 아니라 참여정부 3년에 대한 총체적 심판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집권 3년이 지나도록 매사 남 탓만 하는 정권, 실력 없는 실세들, 싸가지 없는 ‘홍위병’들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준엄한 평가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두 분은 “당보다 인물을 보고 표를 찍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유권자들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낙선은 결코 두 분의 책임과 잘못이 아닙니다.

    30년 이상 투표에 참여해 왔고, 24년가량 선거를 취재해 봤지만 이처럼 일찌감치 승부가 예견되고 시종일관 표심(票心)이 유지된 선거는 없었습니다. 서울 남대문시장 일부 상인이 선거 전날 “사람 따질 것 없다. 무조건 2번에다 찍으면 된다”는 사발통문을 돌렸다는 전언이나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손님을 향해 “돈 못 벌어도 좋으니 내 차에서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는 개인택시 운전사의 얘기가 성난 민심을 웅변해 줍니다.

    강 후보는 저보다 두 살 아래고 진 후보는 저보다 세 살 위입니다. 1950년대에 태어나 유신시대인 1970년대 대학을 다닌 50대라는 점에서 우리는 비교적 비슷한 시대적 경험과 분노를 경험했다고 봅니다.

    낙선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40대에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 후보와 같은 연배에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른 진 후보의 성취는 우리 세대의 상징이자 자랑입니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선거를 통해 줄곧 동년배들의 선두에 서 왔고, 20대 이후 거의 좌절을 겪지 않았을 두 분이 겸허하게 자신의 인생과 세상을 돌아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상은 결코 간단치 않고 민심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투표함이 열리기 전부터 세간에는 “집권 세력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광범위하게 번져 갔습니다. 군사 독재 정권 시절 툭하면 “군(軍)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던 것처럼 “증오에 분별력을 잃은 집권층과 ‘홍위병’들이 가만히 앉아서 정권을 내주겠느냐”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앞으로 닥칠 정치적 변혁과 갈등, 그로 인해 분출될 한국인들의 증오와 분노가 염려됩니다.

    아울러 두 분이 이번 선거 운동 기간 중 현장에서 확인한 민심을 당 안팎의 지지자들에게 진솔하게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이가 ‘국부(國富) 대신 빈곤(貧困) 창출로 연이어 정권을 잡기로 마음먹은 세력’이 똘똘 뭉쳐 다시 한번 좌파 정권 창출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두 번의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웰빙 정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압승도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학습 효과’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총칼로 일어선 정권은 총칼로 망했듯 여론 조사, 인터넷, 편 가르기, ‘악어의 눈물’로 흥(興)한 정권은 반드시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 어떤 정치 사회학적 분석에 우선하는 세상사 인과(因果)의 법칙입니다.

    두 달여 전에도 말씀드렸듯, 두 분은 오늘의 한국 정치판을 배회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들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푹 쉬시고 새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겸손하십시오. 신께서 다시 한번 두 분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