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란에 이 신문 전영기 중아일보 정치부분 부장대우가 쓴 '박근혜의 집권의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여인의 얼굴에 흉터를 남기고 수치와 공포심을 심으려 했다. 그러면 여인은 대선 출마를 포기할 줄 알았다. 박근혜는 그런 테러 의도를 좌절시켰다. 그는 정치적으로 강해졌다. 한나라당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라는 인식이 또렷해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대전에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배신자를 응징하는 행위는 정치적 인간으로서 박근혜의 새로운 면모다. 자연인 박근혜는 배신자를 응징하기보다 응시했었다.

    2004년 총선 때 당을 탄핵 역풍에서 구해내고, 2005년 보궐선거 때 23대 0의 신화를 쓰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미다스의 손'을 입증함으로써 박근혜는 과거 이회창 총재가 누렸던 권위와 영향력을 한나라당에서 확보했다. 차기 대선을 향한 박근혜의 도전이 한나라당과 빈틈없이 맞물려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박근혜는 생각의 정치인이다. 20대에 부모를 참혹하게 여읜 그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삶 자체'보다 중요했다. 생각은 그를 금강석같이 빛나는 인생의 지혜로 안내했다. 오늘날 그가 지닌 단정한 매력과 신비한 카리스마는 고통→보람→기쁨→자아발견의 단계를 거쳐 맺어진 생각의 열매다.

    그의 지혜의 한 토막들; "말은 자기 속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있다고는 하나 내가 경험한 여러 사람은 자기 속을 감추기 위해 말을 한다.""양심은 인간과 하늘을 연결하는 통신망이다. 그것을 많은 인간이 스스로 차단하고 항로 잃은 배처럼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다.""몸은 무리하면 꼭 그에 해당하는 휴식을 받아내려 한다."(박근혜 일기모음집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 1998년)

    박근혜는 내적 수양에서 정치적 인간으로 자아를 확대해 왔다. 그렇지만 집권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있다. 인간적 약점이라기보다 전략적 장애물이다.

    전략의 근본은 경쟁구도를 확립하는 일이다. 지금처럼 간다면 2007년 대선 본선전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박근혜와 이명박이 될 것이다.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87년의 양김씨와 비슷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대한 권위와 영향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이명박은 예선전인 당 경선에 매력을 못 느끼게 된다.

    이런 시나리오가 박근혜를 유혹하고 이명박을 시험에 들게 한다. 두 사람은 경선에서 경쟁하면 집권할 수 있고, 대선에서 경쟁하면 집권에 실패할 것이다. 결국 이명박이 경선 경쟁에 참여하도록 박근혜가 당내 권위와 영향력을 줄일 것을 요구받고 있는 처지다.

    권력자가 자기 권력을 줄일 수 있는가.

    어렵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가능하다. ①미래의 더 큰 권력을 위해 지금 권력의 일부를 양보할 수 있다는 전략적 마인드 ②양보한 뒤 다시 회수할 정교한 프로그램의 개발 ③이런 일을 함께 수행할 만한 믿을 만한 핵심 인력이다. 이 세 가지는 고도의 권력의지에서 나온다. YS가 3당 합당에 굴복한 것(90년)이나,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92년),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과 편법(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것(2002년)이 이런 권력의지의 사례다.

    박근혜는 고도의 권력의지가 있는가. 아직 갖추지 못한 듯하다. 박근혜에겐 미래의 전략적 마인드보다 현재에 충실한 인간의 정직성이 중요하다. 집권을 향한 정교한 게임 프로그램은 박근혜의 '바른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핵심 인력도 프로페셔널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박근혜의 집권 장애물은 그의 마음속 장애물이다. 집권을 위해 자기가 추구하는 다른 가치들을 희생할 수 있는가. 그게 바로 권력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