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진보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황우석 사태에 대해 “민주주의가 퇴행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잘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12일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가 주관한 ‘민주주의, 여전히 희망의 언어인가’ 포럼에서 ‘한국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이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해졌는지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주의자들의 자성이 이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적 정책 노선을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추구해왔지만 이는 시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정치적 가치와 정치 이해 방식과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노 정부가 동북아 허브 건설, 지역균형 발전,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 건설과 같은 정책을 펼치며 이에 ‘개혁’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무언가 큰 일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불러 일으켰다며 “이렇게 국가 자원의 거대한 재배분이 엄청난 사회적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이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을 창출했지만, 정작 한국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의 황우석 사태는 노 정부의 과학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잘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이라며 “무언가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부의 강박관념과 한국을 세계 생명공학의 중심으로 내세우고자 했던 과학정책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석했다. 또 노 정부의 생명공학 정책지원과 일반 민중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결합은 결국 진실과 비판이 억압되는 일종의 ‘총화단결’ 상황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과정에서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의 일부와 극우 세력간의 연대를 볼 수 있었다”며 “황우석 사태는 전 사회적 영역에서의 ‘민주주의의 변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파·개혁파·개혁적 지식인들은 ‘정치적 힘의 중심’을 건설하는데 실패했고 제도권 내 세력과 구분되는 어떤 프로그램도 발전시키기 못했다”고 비판하며 “이제와 진보지식인들은 ‘노동운동이 이익집단운동으로 전락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자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목소리에 대해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하자는 논리는 결국 축구에서 백패스만을 일삼는 공격수와 비슷한 것”이라며 “보수파들이 박정희 신화를 불러들이듯 개혁파들은 과거 운동의 신화를 불러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의 변형을 타개하기 위해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절차와 제도, 그리고 국가의 구조와 작용 원리를 이해하고 습득하여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포럼에는 최 교수 외에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장이 ‘신자유주의시대·포스트 민주화시대의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들’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또 권진관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