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0일자 오피닌언면 '국민논단'란에 한서대 김삼룡 교수(행정학 전공)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할까?

    세계사적으로 복고주의, 보수주의 또는 진보주의라는 개념들은 18세기 후반에 생겨났으며, 1930년 경에는 3자가 병존했다. 당시 3자의 목표지평은 ‘더 인본주의적인 행복한 사회’로서 오늘날과 대동소이했다. 시간적 지평을 보면,복고주의(과거)가 ‘그리운 옛날의 향수’를 노래했던 반면, 보수주의(현재)는 ‘그래도 만족스런 현재’라는 생각으로 살았고, 진보주의(미래)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리워했다.

    보수주의는 개혁이란 개념을 내포함으로써 복고주의(전통주의)와 구별됐다. 보수주의 사상과 대의사상의 두 대표자들인 영국의 버크(Edmund Burke)와 프랑스의 아베 시예스(Abbe ‘Siey’es)는 이렇게 이해했다. 여기서 보수주의는 ‘비보수주의적 과거’라는 양식도 먹고 살았다. 즉, 보수주의는 사회가 전에는 달랐다는 것, 진보적이었다거나, 최소한 달리 개혁적이었다는 것도 고려한다. 이 점에서 (개혁)보수주의는 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복고주의보다 항상 더 탄력적이었다. 복고주의가 전통의 피상성을 내용으로서 고수하려고 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특정한 원칙들을 유지하려는 탄력적 원칙주의이기 때문이다.

    그 후 복고주의라는 용어는 탈락되고, 다른 두 개념도 체제관계적 의미를 추가적으로 지니게 됐다. 예를 들어 대의민주주의 국가, 더 정확하게는 혼합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의민주주의자가 보수주의자였던 반면, 좌·우파 동일성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동일성민주주의자가 보수주의자였으며,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의미에서는 남한의 보수주의자가 북한의 진보주의자에 가까운 반면, 남한의 진보주의자는 북한의 보수주의자에 가깝다.

    20세기 60년대에는 전선이 새롭게 형성됐다. 보수주의가 민주주의를 주로 국가의 조직원칙이라고 본 반면, 진보주의는 지배현상이 있는 곳이면 모든 사회적 부분영역들에서도 실현돼야 하는 생활형태라고 보았다. 또 전자가 자유와 성장을 중요시 한 반면, 후자는 평등과 분배를 더 강조했는데, 우리나라의 ‘사학법 개정’ 논의는 이 파동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민주화 파동’에서 진보주의도 ‘개혁환영주의’의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진보라는 명분으로 퇴보시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즉, ‘절차적’ 진보주의와 ‘내용적’ 보수주의의 결합 필요성도 경험했다. 예를 들어 (절차적) 참여민주주의는 내용적 생산능력 또는 생존능력과 결합돼야 한다는 것을 경험했는데, 여기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동시성’ 현상이 나타났다. 그 반대로도 물론 나타났다.

    여하튼 이러한 동시성은 ‘목표지평의 동시성’과 함께 타협의 기초인데, 이와 같은 경우에 성립하는 입법은 불가피하게 소위 ‘실험입법’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최소한의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도, 보수-진보 스펙트럼상에서 각각 중심으로의 무게이동이 필요한 상태라고 생각된다.

    현재 여당의 ‘날치기 통과’를 계기로 정국경색이 계속되고 있는데, 결국 정치인들의 수준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보수주의도 진보주의도 그 이념적 목표는 결국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이 때 국민은 헌법상 ‘관념적 변수’로서 ‘이미 태어난 사람, 지금 태어나고 있는 사람 및 앞으로 태어날 사람’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정치가들은 때로는 추정적·가설적 국민의사를 경험적 국민의사보다 우선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정치꾼들은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어려운 제도이다. 더 쉬운 길은 ‘적과 동지간의 싸움’을 일삼는 독재에로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