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의존 기형적 의료체계서 예고된 대란비대면진료 등 임시방편 한계… 환자 피해 가중행정처분 보다 의료체계 재정립이 중대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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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진 기자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3개월 또는 그 이상 면허정지'를 받는다고 해도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만 1년이 미뤄지는 셈이다. 필수의료를 하기 싫다면 일반의(GP)로 궤적을 바꿔도 된다. 실제 의업을 포기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대규모의 행정처분은 시대적 사명을 갖고 희생했다는 의미로 의사사회에서 훈장이 될 것이다. 해외 진출 시엔 문제의 소지가 있겠지만 병원을 개원하는데 문제가 없고 추후 이들을 채용하는 병원에서 이를 결격 사유로 삼을 개연성도 없다. 정부의 압박이 두렵지 않은 이유다. 

    지난해 11월 개정된 의료법으로 집단행동으로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같은 형만 받아도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지만 이를 실행하긴 어렵다. 일부의 일탈이 아닌 80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한 번에 도려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의사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다. 하지만 정부 역시 공공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의사들의 직업 행사에 일정한 제한을 둘 수 있다. 이 상반된 주장은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의료대란 버티려면 '철저한 의료전달체계' 관건 

    애초에 히포크라테스 선서·제네바 선언은 상징적 문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 정부를 탓하기 위해 환자를 버린 시대가 됐다. 결국 전공의 공백을 감수한 채 2000명 증원이 결정되고 의료대란을 버텨야 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단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이참에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전공의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를 탈피하고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의료대란 속에서 지독한 고질병이 해결될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도 보인다.

    최근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의 발음 실수로 '의새'가 인터넷 밈(Meme)으로 떠올랐지만, 그 전엔 '의노(의사노예)'가 자조적 형태로 전공의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병원은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비싼 몸값의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고 비용대비 효과가 좋은 전공의를 갈아 넣어 운영했다. 여기에 연속 당직을 세우는 등 과도한 노동력 착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왔던 전공의들이 빠지자 수도권 대형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에는 중증 환자 중심으로 진료체계가 유지되고 그 이하는 병원과 의원으로 회송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응급실 과밀화' 문제도 강제적으로 해소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인력난을 대처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한계로 철저한 시스템 가동이 필수적이다. PA(진료보조) 간호사, 비대면진료 등을 활용해 의료대란에 대응하고 있지만 곧 2차 병원이 꽉 차 대응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전공의 공백 상황에서 버틸 여력을 만들어 의료체계를 재정립하는 것은 정부가 행정처분에 힘을 쏟는 것보다 우선시 돼야 할 무겁고도 중대한 숙제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의료 상황을 매일 점검해야 한다. 

    의사 혐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은 애석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고착화되면 안 된다. 현장에 남아 있는 의료진들은 '번 아웃'에 시달리며 환자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