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교통 혁신 기후동행카드 '절반의 성공'…20·30대 절반 이상경기·인천 등 지자체간 협의 안 돼…서울 출퇴근 125만5518명 소외대중교통 활성화 등 본래 목적 달성 어려워
  •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1호선 시청역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하고 있다.ⓒ서성진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1호선 시청역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하고 있다.ⓒ서성진 기자
    "강남과 의정부는 빈부격차만큼 교통 격차가 심각합니다. 1년에 두 달을 길에 허비하고 있어요. 주 52시간이 시행되면서 '저녁 있는 삶'을 기대했는데 저녁은 커녕 '아침도 없는 삶'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잘 때 출근하고 잠들었을 때 퇴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해 주세요."

    지난달 25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 참석한 한 시민의 하소연이다. 이날 정부는 '출퇴근 30분 시대'를 약속하며 ▲전국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시대를 통한 초연결 광역경제생활권 실현 ▲신도시 교통문제 해결을 통한 삶의 질 제고 ▲철도·도로 지하화를 통한 도시공간 재구조화 등을 담은 교통분야 3대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최소한 5년 뒤에나 실현가능한 일이다. 가장 먼저 GTX 최초로 개통하는 A노선은 수서∼동탄 구간만 올해 3월에, 파주 운정∼서울역 구간은 연내에 개통하기로 했다. A노선 전 구간이 완전 개통하려면 2028년이 돼야 한다. 이마저도 GTX 계획안이 처음 나온 2010년에서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올해 초에 착공하는 GTX B노선(인천대 입구∼마석)은 2030년에, C노선(덕정∼수원)은 2028년에 각각 개통할 예정이다. 수도권 출퇴근 30분 시대가 현실화되기까지는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 주민은 서울시민'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경기·인천과 서울을 연계하는 교통편의 증진을 주문해왔다. 그 첫번째가 지난달 선보인 오세훈표 교통혁신 정책인 서울 대중교통 무제한 통합 정기권 '기후동행카드'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기후동행카드 판매 첫날인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2일까지 모바일카드와 실물카드 31만장이 판매됐다. 유형별로는 모바일카드 12만4000장, 실물카드 19만1000장이 팔린 것으로 파악됐다.

    기후동행카드는 전국 최초 대중교통 무제한 통합 정기권으로 월 6만원대로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심야 포함)·마을버스,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

    오 시장 역시 신년 기자간담회서 "기후동행카드의 본질은 서울시민이 이용 대상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 인천시민, 서울을 둘러싼 도시에서 생업·학업을 위해 정기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가는 분들에게 최대한 편의를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 ▲ 오세훈(오른쪽) 서울시장, 하은호 군포시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군포 기후동행카드 업무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오세훈(오른쪽) 서울시장, 하은호 군포시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군포 기후동행카드 업무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기후동행카드가 시민 편의 증대, 대중교통 활성화 등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편의점과 역사 내 사무실에서만 구입 가능하고 어느 노선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등 사용 절차가 복잡해 특정 연령층만 사용하고 있어서다.

    실제 기후동행카드 구매자 연령대를 살펴보니 20대와 30대 청년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까지 판매된 31만장 중 30대(29%)가 가장 많았고 이어 20대(27%), 50대(19%), 40대(17%) 순이었다.

    시 관계자는 "20∼30대의 구매 비율이 높은 건 기후동행카드가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청년층의 교통비 부담을 유의미하게 줄여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달리 말하면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이용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후동행카드의 본래 목적이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을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해 탄소중립을 실현,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의미지만 주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40대 이상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가 기후동행카드의 롤모델로 꼽은 독일의 '도이칠란트 티켓'(D-티켓)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도입한 월 49유로(약 7만원) 대중교통 무제한 정기권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정책적 목적으로 도입됐다.

    다만 기후동행카드보다 훨씬 파격적 할인 혜택을 주는 D-티켓은 약 1100만장의 구매자 가운데 8%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던 신규 고객인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은 지난해 연방정부와 16개 주정부가 총 30억유로(약 4조3773억원)를 부담해 D-티켓을 운영하고 있지만 효과가 크지 않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카드 도입 과정에서 경기·인천 등 지자체간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서울시내 대중교통 이용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수도권 시민들은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 시장이 말한 '수도권 주민은 서울시민'이라는 것과 배치된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매일 통근·통학하는 시민은 125만5518명에 달한다. 실제 서울 대중교통 이용객 수에 비해 기후동행카드를 발급받는 사람이 적은 이유다. 

    게다가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대중교통현황조사를 보면 지난해 서울시민의 한 달 평균 대중교통비는 7만1745원으로, 기후동행카드 월 6만5000원과 차이가 크지 않다. 

    서울환경연합은 논평에서 "무엇보다 자가용 이용자들이 출퇴근 수단을 대중교통으로 전환할 만한 유인이 크지 않다"면서 "자가용 이용을 줄이기 위해선 자동차 억제 정책과 병행되거나 기후동행카드의 요금이 지금보다 훨씬 저렴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