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본격 시행…퇴직 경찰·교원 대상전문가들 "학폭 사건 사법화 심화시킬까 우려"법적 권한과 현실적인 보상 체계도 필요
  • ▲ 지난해 12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 전담 경찰관 역할 강화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12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 전담 경찰관 역할 강화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일선 학교에서 교사가 맡아왔던 학교폭력(학폭) 조사를 오는 3월부터 퇴직 경찰관 등으로 구성된 ‘전담조사관’이 처리한다.

    일선 현장에서는 학폭 사건에 대한 교사들의 민원 처리 부담이 줄고 전문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려 섞인 시선도 팽배하다. '위촉 봉사직'으로 운영되는 전담조사관의 고용 형태와 근로기준 등 확실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해자와 피해자 등 조사 대상 대부분이 미성년자인 학폭 사건의 사법화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3일 경찰 등에 따르면 학폭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학폭 전담조사관' 선발이 각 시도 교육청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폭 전담조사관은 기존 교사들이 담당하던 학폭 사건 조사를 총괄한다. 시도 교육청별로 20여명에서 500여명 안팎으로 모집해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부터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지원 자격은 학폭 업무 또는 수사 경력이 있는 퇴직 경찰이나 퇴직 교원, 청소년 전문가 등이다.

    이들의 조사를 통해 사안의 중대성이 판별되는데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한 사건이면 학교에서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학폭 사례 회의로 넘어간다. 이 회의에는 조사관과 학폭 전담조사관, 변호사 등이 참여해 조사 내용을 검토하고 분석해 학폭대책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게 된다. 

    이처럼 전담조사관은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목격자 등을 조사하고 증거 수집을 포함해 보호자 면담, 보고서 작성, 학교장 보고 등의 종합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과 난이도에 비해 조사관들이 받게 될 급여는 턱없이 낮게 측정돼 제도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사관의 경우 1년 간 위촉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학교폭력 조사 1건당 20만~40만 원을 받게 된다. 

    조사관 대부분은 퇴직 경찰관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이 '전담조사관'이라는 호칭 하에 학생들과 조사자-피조사자 관계에 놓이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울러 일부 지역은 조사관이 단 1명만 배치될 예정이어서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제대로 된 대처가 어려울 것이란 현실적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구체적 논의와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기존처럼 교사에게 학폭 사건이 전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시스템과 법적 권한, 보호 장치 등을 마련해 전담조사관들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법률적 권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일을 더 잘하리라는 보장 역시 없다"며 "퇴직 경찰관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업무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학폭 조사관 제도의 경우 조사관이 전직 경찰관이란 직업상 특징 탓에 조사 대상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며 "소년보호 처벌은 형벌이 아니라 불이익은 없지만 사실 소년원에 다녀올 경우 전과자와 비슷한 취급을 당하기 쉬운 이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사관의 역할과 비용, 권한, 책임 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며 "학폭 사건은 사회복지 및 아동보호 기관에서 상담 전문가를 통해 해결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해 일선 현장에서 효과를 거두려면 조사관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훈련과 교육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며 "업무 난이도와 성과에 비해 경제적 보상이 미흡하면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적절한 대가와 성과 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