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회장 "축구의 친구, 진정한 전설에 애도"
  • ▲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 ⓒ뉴시스
    ▲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 ⓒ뉴시스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 바이에른 뮌헨(FC BAYERN MÜNCHEN) 명예회장이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각)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두 차례 심장 수술과 한 차례 고관절 수술을 받았던 베켄바워는 치매와 파킨슨병 등 여러 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베켄바워의 유족 측은 DPA 통신을 통해 "베켄바워 명예회장이 7일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밝혔으나 정확한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1945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워는 바이에른 뮌헨 유스에서 성장해 1964년 뮌헨 1군 선수로 데뷔했다. 데뷔 첫해, 팀과 함께 분데스리가(Bundesliga) 1부 리그에 뛰어든 베켄바워는 1977년까지 뮌헨 소속으로 총 582경기(74골 75도움)에 출전해 뮌헨이 분데스리가 정상을 네 차례 밟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European Cup)을 세 차례 들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잠시 미국 프로축구 리그(MLS) 뉴욕 코스모스(New York Cosmos)에서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Pele)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한 베켄바워는 1980년 다시 분데스리가로 컴백해 함부르크 SV(Hamburger Sport-Verein e. V.)의 우승을 이끌었다. 발롱도르(Ballon d'Or)를 두 차례 수상하고 1983년 38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1965년부터 1977년까지 서독 축구 국가대표로 활약한 베켄바워는 서독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베켄바워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베켄바워는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Mario Zagallo),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Didier Deschamps)과 함께 월드컵 역사상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컵을 품에 안은 진기록을 수립했다.

    베켄바워는 축구행정가로도 승승장구했다. 뮌헨 감독을 맡아 1993~1994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 베켄바워는 1994년 뮌헨 회장을 맡아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6년엔 월드컵을 독일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당시 월드컵 유치 활동을 하며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한 의혹이 제기돼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현역 시절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베켄바워는 소위 '빌드업'의 시초가 되는 창조적 리베로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 뮌헨에서 뛰고 있는 김민재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1980~1982년 분데스리가에서 차범근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함께 뛰며 인연을 맺은 베켄바워는 차 전 감독의 아들 차두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가 2010년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리그(SPL)의 셀틱 FC(Celtic Football Club)로 이적할 때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베켄바워의 사망 소식에 잔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놀라운 업적을 세웠음에도 언제나 겸손했던 '카이저'는 위대한 사람이자 축구의 친구, 그리고 진정한 전설이었다"고 애도했다.

    알렉산더 체페린(Aleksander Ceferin) UEFA 회장은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활약한 베켄바워는 완벽한 볼 컨트롤과 선구자적 스타일로 축구 경기의 방식을 바꿨다"며 "진정한 전설에게 작별을 고한다"고 추모했다.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 총리는 SNS를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열정을 불러일으킨 독일 최고의 축구 선수였던 카이저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