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이자 한국전쟁 영웅… 대한민국 국군 창설 참여평안북도 중앙도민회 주관으로 이북5도청 중강당에서 열려
  • ▲ 김홍일 장군. ⓒ국가보훈부
    ▲ 김홍일 장군.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이자 전쟁영웅, 정치가로서 대한민국 독립과 호국, 민주를 아우르는 큰 업적을 남긴 일서(逸曙) 김홍일 장군 서거 제43주기 추모제가 22일 이북5도청 중강당에서 거행된다.

    2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평안북도 중앙도민회 주관으로 진행되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양종광 평안북도지사, 윤동진 평안북도 중앙도민회장과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한다.

    이번 추모식엔 특별히 미국에 거주 중인 김홍일 장군의 3남인 김덕재씨가 가족 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다.

    김홍일 장군은 평안북도 용천 출생(1898년)의 김홍일 장군은 1918년 9월,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로 재직 중 학생비밀결사 사건 이후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는 김구 선생과 함께 상해에서 활동하며 이봉창 의사의 동경 일왕 폭탄 투척 의거(1932년 1월8일)와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1932년 4월29일) 등에 사용할 폭탄을 제조해 지원했다.

    1944년에는 민족혁명당 집행위원,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 겸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으로 부임해 한미합작으로 국내상륙작전을 준비했다. 아쉽게 이 작전은 1945년 8월15일 광복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육군사관학교 교장과 육군종합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6일간의 한강방어선 전투를 통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으며, 육군 제1군단장으로는 기계·안정전투를 비롯해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는 등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다.

    1951년 중장으로 예편한 후에는 주대만 한국대사,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 광복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인으로서 3선 개헌 반대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확립에도 힘썼다.

    독립·호국·민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김홍일 장군은 1980년 8월8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김홍일 장군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태극무공훈장(1951년)을 수여했으며, 1999년 8월의 독립운동가, 2015년 1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각각 선정하기도 했다.

    김홍일 장군의 3남 김덕재씨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항상 고향이 그립고 오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못 와봤다. 이번 방문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 묘소에 가고 싶다"고 전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김홍일 장군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이자 국가보훈의 3대 축인 독립, 호국, 민주의 역사에서 오직 조국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시며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라며 "우리는 조국 광복을 쟁취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며,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공히 기여하신 김홍일 장군님과 같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그 숭고한 애국의 큰 뜻을 미래세대에도 온전히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