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사노조, 설문조사 이틀 만에 교권 침해 사례 202건 접수교권 침해 유형, 학부모 악성 민원이나 부당한 민원이 40%로 가장 많아박광식 위원장 "교사 없으면 교육도 없다… 교사 보호해서 교육 바로 세워야"
  • ▲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에서 시민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에서 시민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신입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울산교사노조가 지역 교사들의 교권 침해 사례를 모은 결과 이틀 만에 200건이 넘는 사례가 모였다.

    28일 울산교사노조에 따르면, 지난 25~26일 조합원을 상대로 '교권 침해 사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202건의 사례가 접수됐다. 초등학교가 168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교 15건, 특수학교 9건, 고등학교 7건, 유치원 2건 순이었다.

    교권 침해의 유형으로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나 부당한 민원(40%)'이 가장 많았다.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불응·무시·반항(33%)'이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학생의 폭언·폭행(17%)'도 있었으며, 단순한 교육활동 침해가 아닌 교사의 인격을 모독하는 심각한 내용도 많았다.

    실제로 한 교사는 "지난해 신혼여행 중에 1주일간 연락이 어렵다고 밝혔음에도 학부모에게 '어디냐?' '우리 아이가 학교를 안 가려고 한다' '빨리 귀국해라' '시간 될 때 전화 달라' 등 여러 통의 독촉 문자를 받으며 시달렸다"고 밝혔다.

    해당 교사는 "상담시간을 정해서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이야기하자고 말씀드렸지만 이를 무시하고 '지금 당장 와 달라' '빨리 전화를 달라'고 학부모가 말했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그러면서 "'지금 당장은 어렵고 4시 이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하고 (4시 이후에) 여행 일정을 깨고 (해당 학부모에게) 전화를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사는 "4시부터 5차례나 연락을 드렸지만 받지 않았다"며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내용에 대해 그동안 지켜본 아이의 학교생활을 장문의 문자로 남겼다"고 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연락에 대한 불안함과 스트레스에 쌓여 신혼여행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고 토로한 이 교사는 "그렇게 급하다고 독촉하셨으면서 (제가 보낸 문자를) 다음날까지 안 보다가 읽씹(문자를 확인하고 답장하지 않음)했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그러면서 "나중에 귀국해 아이를 만나보니 6학년이라 사춘기가 왔는데 단순 귀찮음과 집에서의 불화로 등교거부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사는 "제가 학교를 비운 동안 대신 와주신 시간강사 선생님께도 (해당 학부모는) 교실 전화로 '아이를 깨워 달라' '등교할 수 있게 선생님이 (지도)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요구했다"며 "강사 선생님이 아침에 전화로 아이를 깨워 등교하도록 10분 넘게 달랬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새벽 2시에 만취한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화해 술주정을 한 사례도 있었다.

    피해를 입은 교사는 "해당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한 학생으로부터 갈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며 "만취 상태였던 학부모는 저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했던 말을 1시간 동안 반복했다"고 전했다. 

    이에 피해 교사는 "정말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제가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학생끼리 있었던 일인데, 왜 새벽에 자다가 이런 봉변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이밖에도 자신의 아이가 혼자 배변 처리를 못하니 교사에게 닦아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 등 교사를 대상으로 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 사회 통념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교권 침해, 교사 생존 위협하는 지경"… 대책 마련에 나선 교사들

    울산교사노조는 체계화된 민원 처리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학부모가 교사의 개인전화로 연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교내 통합 민원창구를 만들어 학생의 교육과 관련한 중요한 내용만 담당 교사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사노조는 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관련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가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부드럽게 타이르는 것 외에 교사가 아동학대를 피해서 제지할 방법이 없다"며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사노조는 교사를 학교폭력 업무에서 제외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교사노조는 "아무 권한도 없는 교사가 학폭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교사는 법적으로 학폭 의심 신고 의무만 부여하고, 조사는 수사권이 있는 경찰이 책임지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광식 울산교사노조 위원장은 "그동안 교사들은 각종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 아동학대 위협을 맨몸으로 감당하며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며 "이번 설문을 통해 그 심각성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 "교사가 없으면 교육도 없다. 교육활동뿐 아니라 교사를 보호해서 교육이 바로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당국에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