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외광고물법 개정안 시행 후 도심 곳곳 노조 현수막… "시야 가려 사고 우려"지자체별 옥외광고물법 해석 달라 '불법·합법' 여부 놓고 혼선전문가 "집회·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로 함부로 철거 어려워"
  • ▲ 3일 오후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 앞 횡단보도에 민주노총이 내건 현수막이 여러 단으로 걸려있다. ⓒ임준환 인턴기자
    ▲ 3일 오후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 앞 횡단보도에 민주노총이 내건 현수막이 여러 단으로 걸려있다. ⓒ임준환 인턴기자
    국회의사당역, 광화문광장 등 서울시 유동인구가 몰리는 곳에는 민주노총·한국노총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내건 현수막들이 득시글하다. 행인들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상가 간판을 가리기도 해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현수막 설치를 둘러싼 조항과 기준이 모호한 탓에 지자체는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본지는 최근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국회대로, 국회의사당역,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여러 단체가 내건 '우리가 김준영이다! 구속동지 석방하라', '민생파탄 검찰독재, 윤석열 정권 퇴진!'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노조 활동에서 벗어나 '정치적' 목적이 담긴 이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 제8조(적용 배제)'를 교묘히 이용했다.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정치활동·노동운동을 위한 행사나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함이면 관련 구청에 신고 하지 않아도 설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이러한 현수막을 길거리에 설치한 것이다. 조항의 맹점을 파고든 셈이다.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제8조는 2022년 12월11일부터 시행됐다. 개정안은 지자체가 옥외광고물법을 근거로 정당, 노조 등의 단체가 설치한 현수막 등의 광고물을 철거하는 것을 막아 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같은 사각지대를 노린 윤석열 정부 비판·퇴진 등의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들이 인도, 가로등, 횡단보도 등 서울시 곳곳에 설치된 것. 시민들은 현수막으로 인해 통행에 어려움을 겪고, 차량운행 시 시야가 가려지며 도시의 미관이 저해된다며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객관적 자료에 따르더라도 노조·정당이 설치한 현수막으로 시민들이 피해를 겪는 빈도는 늘어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6월12일에 발표한 '정당 현수막 현황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옥외광고물 개정안 시행 전 3개월 동안 6415건이었던 현수막 관련 민원이 법 시행 후 3개월 사이에 1만4197건으로 2배 이상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옥외광고물 설치에 수량과 규격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 "각 정당과 노동 단체가 홍보 효과를 키우기 위해 대형 현수막을 다량 설치해 현수막으로 인한 사고가 8건 발생하는 등 국민 생활에 불편을 끼치고 있다"며 현수막으로 인한 피해를 발표했다. 홍보 효과가 우선시 돼 시민의 안전이 뒤로 밀려난 것이다.

    문제가 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3차례에 걸쳐 발의됐으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공포됐다. 2020년 7월24일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9명이 개정안을 처음 발의했고, 2020년 12월31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마지막으로 2021년 3월9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남국 의원 등 10명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회 행안위를 거친 뒤 2022년 제397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길거리에 우후죽순 설치된 현수막도 골칫거리지만 지자체가 정한 지정게시대 외에 정당·노조가 가로수나 펜스, 공용자전거 거치대 등에 자의로 설치한 현수막도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차량과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중구에 위치한 전국 민노총 사무실 앞 사거리에는 한쪽에만 10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은 아래서 위까지 겹겹이 쌓여 대략 4m 가까이 됐다. 민노총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정진수(27)씨는 "왕복 2차선 도로라 가뜩이나 비좁은데 현수막이 시야를 가려 사고가 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중구 인근 식당 종사자 정모(64)씨는 "(민노총에서) 설치한 지 두 달 가까이 된 현수막도 보인다"고 말했다. 심지어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근처 인도에는 민노총이 집회 후 방치한 현수막이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현수막 설치 후 최소한의 관리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정당·노조의 현수막 설치와 관련한 법 조항이 '적법한 노동활동·정치활동'으로 명시된 탓에 '활동'에 대한 해석을 지자체별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었다. 

    종로구청 도시경관과 관계자는 "옥외광고물법 적용 배제 조항에 의해 구청의 허가·신고 없이 현수막 게재가 가능하다"며 "노동운동 같은 집회시위의 경우 (종로구는) 비영리 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옥외광고물법 제8조 5항에 의거해 현수막 설치를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영등포구청 가로경관과 관계자는 "(현수막 설치는) 각 지자체 별 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하고 집회 중에 걸 수 있다"며 "구청이 지정한 게시대 외에 현수막을 설치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 도로쪽에 설치한 현수막은 정당을 제외한 다른 단체가 내거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수막과 관련한 조항 해석에 대해 지자체도 갈팡질팡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혼선을 빚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에 대해 민준우 법률사무소 연익 대표변호사는 "옥외광고물법 제8조 4항, 5항에 따르면 정치활동·노동운동을 위한 집회, 행사 표시를 위해 30일 이내 비영리 목적의 광고물은 허가·신고가 필요 없다"며 "다만 노조에서 실제로 집회를 하지 않고 꼼수로 집회 신고만 한 뒤 현수막을 걸어 놓을 때가 있어 지자체·경찰이 현수막을 철거했다가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돼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철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현행법을 실제 적용하는 데에 지자체의 어려움이 있음을 지적했다. 

    최건 법무법인 건양 변호사는 "해당 법에 대한 적용 기준이 모호해 지자체가 경우에 따라 해석하는 실정"이라며 "개정안에 대해 법적으로 규정을 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어 조심스레 다뤄야 하지만 시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부분이 크다면 이들의 권익을 우선하는 규제안이 나와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민노총 관계자는 도로변에 난립하는 현수막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현수막을 게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지현 한노총 대변인은 "현수막 같은 옥외광고물 설치는 노총에서 관리하는 게 아닌, 외주업체가 담당한다"며 "민원으로 현수막이 철거될 경우 시·구청 지도에 따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