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사교육 돈벌이 핵심… 많이 출제될수록 학원들 호황前 수능 출제위원이 킬러문항 팔기도… 한 문제당 최대 200만원외신이 주목한 '韓 입시문제'… "한국, 교육 시스템 불평등 심각"
  • ▲ 고액 학원료가 판치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 ⓒ뉴데일리 DB
    ▲ 고액 학원료가 판치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 ⓒ뉴데일리 DB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려울수록 사교육이 돈을 번다는 취지로 카르텔 구조를 지적한 가운데 교육부가 올해 출제 절차를 어떻게 손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는 물론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수능을 150여 일 앞둔 시점에서 올해는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고, 공교육 교육과정 위주로 수능 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사교육 근절대책도 추진할 방침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수능의)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고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 교육부 수장으로서 모든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수능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를 이행하겠다는 취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시민단체들은 그간 출제위원의 현직 교사 비율 확대를 요구해왔다. "교육과정을 벗어나지 않은 수능 문제는 당연한 것인데도 그간 킬러 문항이 출제돼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 좌파(左派)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학원가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현재 최상위권을 중심으로 킬러 문항을 사고파는 대형학원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학원에서는 킬러 문항을 발굴하고 우수 문항으로 채택되면 문제당 75만~200만원, 준킬러 문항은 10만~50만원의 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학원들의 수강료는 한 달에 200만∼300만원에 달한다.

    과거 수능 출제를 담당했던 인사가 '수능 출제위원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강남 대형학원 및 전국 입시학원에 판매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통 수능 출제위원들은 강남 입시학원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강사 약력에 수능 출제진에 들어간 사실을 홍보하기도 한다. 이 같은 행위는 '출제 경력을 밝히지 않겠다'고 서약한 내용을 어긴 것으로, 수능 출제 경력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피하기 어렵다.

    '킬러 문항'은 학교에서는 대비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사교육시장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핵심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킬러 문항의 경우 배점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의 정답 여부에 따라 등급이 나뉘게 된다. 점수에 민감한 최상위권과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낯선 문제들을 대비하는 데 학원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다.
  • ▲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교육 내용이 안내돼 있다. ⓒ연합뉴스
    ▲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교육 내용이 안내돼 있다. ⓒ연합뉴스
    '킬러 문항' 정답률 5~6% 이하… "차라리 찍는 것이 낫다"

    국어에서는 주로 '비문학' 독서영역에서 킬러 문항이 출제된다. 비판적 사고와 추론적 사고가 요구되는데, 지문의 난이도가 올라가면 연계 문항의 난이도도 함께 올라가 킬러 문항을 내기에 용이한 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문과생들에게는 생소한 과학·경제 개념이 포함된 지문이 다수 등장하기도 한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에는 만유인력과 관련한 문제가 나왔는데, 당시 물리학자들은 "만유인력 개념이 있어야 푸는 문제라, 이것은 국어 문제가 아니라 물리 문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20학년도 수능 국어 40번 문항에는 자기자본비율(BIS)·위험가중자산 등의 개념을 통해 은행의 재무상태를 평가하는 지문이 나왔다. 당시 서울의 한 대학 교수도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한 이런 어려운 문제를 국어 시험에서 풀어보라고 한다"며 비판했다.

    수학에서도 킬러 문항이 자주 등장하는데, 가장 악명이 높았던 문항은 2018학년 수능 수학 가형 30번 문제로 당시 정답률은 2%였다. 이 문제는 미분과 관련한 여러 개념이 복합적으로 섞여 일각에서는 고교 과정을 벗어난 문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비싼 학원에 다니지 않는 흙수저들은 아무리 혼자 노력해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외신도 한국 입시 문제 주목… "비싼 학원 다니는 학생이 유리"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시각) 국민의힘과 정부가 수능에서 킬러 문항 출제를 배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매년 약 35만 명의 고등학생이 미국의 SAT에 해당하는 수능에 응시한다고 소개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킬러 문항과 관련 "집안 형편이 넉넉해 값비싼 사설학원을 이용할 수 있는 이들에게 유리하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그러면서 "교육 시스템의 불평등이 전 세계적 논쟁거리지만, 특히 명문대 진학이 소수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수단인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블룸버그는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정규 전일제 수업 외에 국어·영어·수학 등 최소 세 과목 이상을 학원에서 집중수강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조명했다.

    "학부모로서는 자녀가 좋은 수능 성적을 얻도록 학원을 이용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블룸버그는 "그 결과 지난해 한국의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 전년 대비 11%가량 증가한 약 26조원에 달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