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관청 허가 없이 '기본재산 처분' 정관 수정해강원도청 "춘천영화제 정관 변경 허가한 적 없어"법조계 "기본재산 재형성 명목 출연금 반환 불가"
  • ▲ 춘천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 춘천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사단법인 '춘천영화제'가 주무관청인 강원도청의 허가 없이 법인 설립 재산의 80%를 빼내, 기본재산 출연금을 낸 당사자들에게 돌려줬다는 의혹이 공식 문서를 통해 제기됐다.

    기본재산 처분은 정관 변경 사항으로, 정관을 변경하려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반드시 얻어야 하는데, 만일 허가 없이 기본재산을 처분했다면 배임 및 횡령에 해당될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

    지난 4일 'NGO저널' 보도에 따르면 춘천영화제 이사회는 전임 주진형 이사장 시절인 2020년 5월 21일 임시총회를 열고, 2016년 사단법인 설립 당시 기본재산 출연금을 낸 당사자들에게 출연금을 돌려주는 안건을 심의해 참석 이사 전원이 이의 없이 통과시켰다.

    NGO저널이 입수한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주 이사장은 "변호사의 자문을 통해 총회를 거쳐 '기본재산 재형성'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사단법인 설립을 위해 당시 기본재산을 형성했던 N고문(400만원)과 K이사(400만원)에게 후원금으로 각각 일시 지급(400만원)과 순차적 지급(월 100만원)으로 돌려드리려고 한다. 이의 없으시면 안건을 통과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NGO저널이 춘천영화제 통장 거래 내역을 확인한 결과, 2020년 5월 25일 N고문 명의 계좌에 '기본재산 재형성' 명목으로 400만원이 입금됐고, 같은 해 6~11월경 K이사에게도 같은 명목으로 총 400만원이 계좌이체된 것으로 드러났다.

    주무관청 허가 없이 이사회 정관 변경

    그런데 당시 춘천영화제 이사회는 '기본재산 재형성'을 의결하기 전, 주무관청인 강원도청으로부터 정관 변경 허가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청 문화예술과 담당 주무관은 NGO저널과의 통화에서 "보통 정관 변경은 명칭 변경, 사업 변경, 사업 추가 등으로 요청이 들어오는데, 사단법인이 '기본재산 재형성' 명목으로 정관을 변경하겠다고 요청이 들어온 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춘천영화제가 '기본재산 재형성' 명목으로 정관 변경 요청을 해온 사실 역시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청에 따르면 기본재산은 원칙적으로 법인이 설립되면 출자한 사람이 돌려달라고 해도 돌려줄 수 없다. 따라서 출연금을 낸 사람에게 돈을 돌려줄 목적으로 기본재산 변동 요청을 하는 곳도 없을 뿐더러 이를 허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3년 전 춘천영화제 이사회에서 주 이사장은 "변호사 자문을 받았다"며 기본재산 출연금을 반환하는 게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했으나, 다수 법조인들은 "개인이 출자해 사단법인이 만들어지면 그 돈은 법인의 것으로 더이상 개인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출연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기수 변호사는 NGO저널과의 통화에서 "이사회가 돈을 돌려주기로 (당사자에게) 약속했더라도 무효"라며 "법인은 인가 나서 한번 설립되면 별개의 독립 법인으로 취소할 수 없다. 출자금을 돌려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마치 부부가 자식을 낳았는데 이혼하면서 자기들이 아이를 먹여살렸다는 이유로 아이를 반반씩 잘라 나누겠다는 말과 똑같다"고 해석했다.

    최명섭 변호사도 "사단법인 기본재산이라도 변동은 가능하지만 이사회 결의를 통했더라도 주무관청에서 매우 엄격하게 살펴본다"며 "관계 서류를 검토해봐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횡령이 될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편법은 맞아 보인다"고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후원금 받는 '다른 통장' 통해 기본재산 출연금 지급

    보도에 따르면 춘천영화제 조직 내부에서도 기본재산 출연금 반환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5월 21일 임시총회 이후 공모를 통해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이안 전 운영위원장은 NGO저널과의 통화에서 "신임 위원장으로 온 후 지난 통장을 살펴봤더니 '기본재산 재형성'이란 명목으로 기본재산 통장이 아닌 다른 통장에서 지급된 것을 확인했다"며 "이에 담당 직원을 불러 누구 허가로 지급했냐고 물으니 '이사장'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가 이사장님에게 불법이 될 수 있다.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주 이사장이) 이사장 전결로 할 수 있다면서 일축했다"고 이 전 운영위원장은 덧붙였다.

    이와 관련, NGO저널은 "사단법인의 기본재산은 엄격히 관리되기 때문에 '기본재산 통장'과 '운영재산 통장' 등을 별도로 구분해 쓰는데, 춘천영화제 이사회는 임시총회에서 기본재산 재형성 안건을 의결했음에도 '기본재산 통장'이 아닌 '후원금'과 '기업협찬비' 등을 받는 다른 통장을 통해 기본재산 출연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춘천영화제 이사회가 애초 기본재산 재형성으로 주무관청의 정관 변경 허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NGO저널은 해석했다.

    이에 대해 김기수 변호사는 "기본재산 통장이 아닌 다른 통장에서 지급된 것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상식적으로 정관에 돈을 돌려준다는 내용이 들어갔을 리도 없을 것이고, 주무관청으로부터 승인이 났을 리도 없어 편법으로 그렇게 한 것이겠지만, 그 자체(다른 통장에서 돈이 지급된 것)가 증거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횡령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출연금 1000만원 중 80% 빼내 편법 '반환' 의혹

    공익법인 공시자료와 강원도청에 따르면 2016년 설립 당시 사단법인 춘천영화제의 출연금 총액은 1000만원이었다.

    즉, 춘천영화제 이사회가 총 1000만원의 출연금 중 N고문과 K이사에게 각각 400만원씩 돌려줌으로써 법인 설립 재산의 80%를 빼낸 것이라는 게 NGO저널의 주장이다.

    NGO저널은 "강원도청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기본재산을 보는 이유 자체가 이 사단법인이 향후 운영이 될지 여부를 보기 위한 것이라, 사단법인이 운영이 안 되겠다 판단이 되면 허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이는 만약 춘천영화제가 기본재산 재형성을 명목으로 주무관청인 강원도청에 정관 변경을 요청했다면, 아예 법인 설립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춘천영화제 이사진 중에서도 이 같은 문제들을 인지하고 시정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임한 이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진 당시 춘천영화제 이사회 이사는 "2020년 영화제 후원 내역 공지에서 '기본재산 재형성'이라는 항목을 통해 법인 기본재산을 이사회 의결, 정관 변경, 지자체 신고 없이 여러 차례 걸쳐 K이사님과 N 전 이사장님 2인에게 출금된 것을 확인했고 이는 위법사항"이라며 출연금을 불법적으로 받은 이사들의 해임 요구 및 기본재산 재형성 관련 이사회 소집을 요구하다 이뤄지지 않자 사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강원도청 문화예술과 담당 주무관은 "△편법적으로 기본재산 형성 출자금을 본인들에게 돌려줬다는 게 확인됐을 때 △기본재산 재형성이 아닌 다른 명목으로 정관 변경을 신청해 편법으로 출자금을 돌려줬을 때, 주무관청은 사후라도 검토 후 당연히 행정조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주진형 전 이사장 "현 이사진과 이야기해보라"


    한편, 논란의 중심에 선 주진형 전 춘천영화제 이사장은 NGO저널과의 통화에서 "그 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말씀드리기 그렇다"면서 "현재 이사회 임원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본인들(기본재산 재형성 관련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 주장대로 진행하면 여기서도 거기에 맞춰 필요하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재산 출연금을 돌려받은 K이사는 "(기본재산 관련) 문제 제기 자체가 성립 안 돼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한 쪽에 설명됐다고 들어서 이해를 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며 "기본재산 출자 등에 관해 제가 거론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저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어서 확인해 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K이사와 마찬가지로 기본재산 출연금을 돌려받은 N고문의 경우, 현재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