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수사 기본은 '해외 수사망'인데… 경찰은 국내법 집행기관, 첩보망 구축 못해현행 정부조직법에도 '해외 경찰조직' 허용 안 돼… 경찰은 '치안질서' 유지에 중점정보 있어야 北 연계 혐의 밝히는데… 개정법은 北 연계 혐의 있어야 정보 수집 허용국정원 직원을 경찰에 파견하면 된다지만… 국정원 직원 외부 기관 파견은 불법이인영 김의겸 등 7명이 민주당 정보위원… 수사상황·자료 요구하면 거부 못해
  • ▲ 지난 2021년 6월 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을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뉴시스
    ▲ 지난 2021년 6월 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을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뉴시스
    "대공수사기법이라는 것을 문서화해서 줄줄 외우면 공유되고 전수됩니까?"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고, '법 집행기관'(law enforcement agency)인 '치안경찰'이 대공수사를 맡게 되는 상황에서 경찰에 국정원의 대공수사기법을 전수하기 위한 '대공합동수사단'이 지난 6일 출범하자 전직 국정원 부서장(1급) 출신인 A씨는 이같이 탄식했다. 

    내년 1월1일 시행되는 '개정 국정원법'의 골자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북한과 연계되지 않은 국내 보안정보'와 관련한 정보수집권을 박탈하는 것. 

    대부분 정보수집·수사 마지막 단계의 결론으로 나오게 마련인 '북한과의 연계 여부'가 정보수집의 요건이 됐다. 그런데 '찬양·고무죄'를 수사할 수 없게 되면서 북한과의 연계 여부를 따질 '단서'를 확보할 길도 막혔다.

    국정원이 공유하는 정보가 경찰에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법 집행기관인 경찰이 타국 영토에 대공수사망과 첩보망을 구축하면 주재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 정보위원회 재적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요구하면 국정원장은 정보위에 정보를 보고해야 하는 개정 국정원법 15조(국회에의 보고)도 여전히 살아 있다. 대북 공작원 실명까지 보고해야 했던 일명 '김병기안(案)'보다는 낫지만, '여소야대' 국면이 그대로 재현된 정보위에서 15조는 심각한 독소조항이다.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해야 하는 현실, '대공(對共)·대(對)정부 전복' 국내 보안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된 국정원의 정보 가치, '안보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오는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대공합동수사단'과 내년에 출범할 '협의체'와 관련해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국내법 집행 기관'인 경찰이 해외에서 대공수사?… "주재국 주권침해"

    간첩의 90% 이상이 제3국으로 우회해 침투하는 현실에서 대공수사의 기반은 해외 대공수사망과 첩보망이다. 그러나 대공정보·수사 전문가들은 경찰은 법 집행 기관이므로 해외에서 수사활동은커녕 해외 수사망과 첩보망을 구축할 수도 없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정원 부서장 A씨는 "경찰은 법 집행 기관이어서 국제법상 외국에서의 공권력 행사(정보수집·수사 활동 등)가 허용되지 않으며, 그러한 행위는 주재국의 주권침해에 해당한다. 또한, 현행 정부조직법상 경찰은 해외 조직을 갖지 않게 돼 있으므로, 경찰이 해외정보 수집망을 구축하고 해외 정보수집 활동을 수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국정원에서 약 30년간 대공수사에 몸담았던 황윤덕 전 대공수사단장(현 한국통합전략연구원장)은 "경찰은 법률적으로, 구조적으로 대공수사를 할 수가 없다"며 "경찰의 대공수사는 집시법 위반과 보안법상 단순 잠입·탈출, 회합·통신, 찬양·고무 등과 같이 종북·좌파세력의 '치안질서' 침해 사범이 대부분이고 이에 특화돼 있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법 제3조에 규정된 '경비·요인경호 및 대(對)간첩작전 수행'과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라는 경찰의 임무는 '국내 치안질서 유지용'이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정원 직원 모임'을 이끌었던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은 "경찰은 국내법 집행이 아니라 영사업무를 위해 해외에 파견된다. 우리 국민이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했거나, 우리 국민·교민·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른 뒤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를 대비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 김의겸(왼쪽 네 번째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유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 등이 지난 2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개혁 긴급토론회 '국정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김의겸(왼쪽 네 번째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유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 등이 지난 2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개혁 긴급토론회 '국정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수사 결론에서 나올 北 연계 여부를 정보수집 전에 입증하라니"

    개정법에 따라 국정원의 '대공·대정부 전복' 국내정보 수집이 불가능해지면서 대공수사에 필요한 정보 수집이 '원천봉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 전 단장은 "개정법은 북한과 연계되거나 연계 혐의가 있을 경우에 한해 국내 보안정보를 수집하게 돼 있다. 내사하고 여러 가지를 합법적으로 수사해도 찾기 어려운 판국에 연계 사실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는가"라며 "대공수사를 위한 정보 수집을 영원히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A 전 부서장도 "북한과 연계 여부를 언제, 무슨 방법으로 가려내느냐"고 반문하며 "북한과의 연계 여부는 정보 수집 단계가 아니라 분석 단계에서 가려져야 한다. 수집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구멍을 뚫어 놓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A 전 부서장은 "예를 들어, 북한의 소형 무인기 탐지·추적·정밀타격이 가능한 레이저 대공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한다는 첩보, 주한미군에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이나 브래들리 장갑차를 운용하는 장교가 신변 불상의 사람과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다는 첩보가 '북한과 연계된 첩보'인지 판단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염 전 차장은 "북한과의 연계 여부는 정보 수집이나 수사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북한과 연계됐다'고 이야기하는 간첩이 어디 있는가. 연계가 의심되는 단체나 사람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여러 정보를 파고들어가야 북한과 연계, 반국가활동 여부를 알 수 있지만, 북한과의 연계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기 전에 정보 수집을 하면 개정법하에서는 '불법사찰'이 된다"고 개탄했다.

    "北 연계 여부 '실마리' 밝힐 '찬양·고무죄', 대정부 전복세력 정보 수집조차 불가"

    이제는 정보 수집을 결정하기 위해 북한과의 연계 여부를 밝힐 실마리를 잡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2017년 11월부터 국정원이 '찬양·고무죄'(국가보안법 제7조)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되면서다. 염 전 차장은 "북한과의 연계 여부는 대부분 찬양·고무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단서를 확인한다. 그런데 그것을 전혀 못하면 국정원은 어디서 단서를 잡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북한과의 연계가 입증되지 않은 국가전복세력을 대상으로 한 정보 수집 권한이 폐지된 것도 문제다. 

    황 전 단장은 "개정법이 규정한 요건에 따르면, 국정원이 적발한 △1986년 10월 마르크스-레닌주의당(ML당) △1987년 2월 제헌의회(CA) 그룹 △1991년 2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2013년 8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 내란선동혁명조직(RO) 등에 대한 내사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뒤엎으려는 국가전복세력인데도 북한과의 연계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전 단장은 "좌파 진영에서는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없어도 경찰이 간첩을 충분히 잘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정원은 방첩(counter intelligence)·대테러 분야 수사권이 없어도 첩보를 받아 검·경에 넘기고 검·경이 이를 넘겨받아 산업스파이를 잘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라며 "그러나 국가들끼리는 적발한 간첩을 '기피인물'(PNG·Persona Non Grata)로 신청하거나 외교적으로 해결하지만, 우리 헌법상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간첩문제를 어떻게 외교적으로 해결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황 전 단장은 "국가 안전보장을 해치는 반국가단체나 간첩은 형법상 '신분범'이지만, 우리 산업기밀을 훔치는 산업스파이는 신분범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방위산업 기밀을 가져간 산업스파이일지라도 그 배후가 국가가 아니라 기업체라면 신분범이 될 수 없다. 형법상의 이 차이는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 ▲ 박지원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지난 2022년 10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박지원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지난 2022년 10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국회에 '북파공작원' 실명·소재지 밝혀야 할 뻔한 민주당 '김병기案'보다는 낫지만"

    물론 개정법은 국정원의 조직, 인원, 소재지, 예산 등의 국회 보고를 요구한 '김병기안(案)'보다는 완화된 안이다. 그러나 "국회 정보위원회가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특정 사안에 대하여 보고를 요구한 경우 해당 내용을 지체 없이 보고해야 한다"는 개정법 제15조에는 여전히 비판의 소지가 있다. 

    염 전 차장은 "김병기 의원의 대표발의안은 조직, 인원, 예산 등을 상세히 국회에 보고하게 돼 있었다. '대북공작원이 누구냐'고 국회에서 물으면 북한에 침투돼 있는 북파공작원 이름을 알려 줘야 할 정도"라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과거에 반정부, 반체제 활동을 했던 경력이 있는 의원들이 많아서 엄청난 문제였다"고 회상했다.

    황 전 단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12명 가운데 7명(윤건영·김병기·김의겸·박홍근·소병철·이원욱·이인영)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위원장(박덕흠)은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야당 위원 7명이 시시콜콜 계속 수사 진행 상황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면 방법이 없다.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국정원의 타 기관 파견은 위법 대공수사권 없는데 협의체에 들어가나"

    정부는 올해 말까지는 검찰·경찰·국정원이 대공합수단을 운영하고, 내년부터는 '협의체'를 운영할 방침이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염 전 차장은 "올해 말까지는 국정원도 대공수사권을 갖기 때문에 합수단의 장(長)을 맡는 것에 하등의 하자가 없지만,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는 내년 1월부터는 하자가 생긴다. 협의체를 만든다고 해도 권한이 없는 기관(국정원)이 협의체에 들어간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황 전 단장은 "내년 1월부터는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없으므로 국정원 직원이 경찰에 파견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의 외부 기관 파견은 불법이고 위법이다. 오래전부터 국정원 직원의 타 기관 파견이나 상주, 상시 출입을 금지해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공합수단과 협의체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80년대 체제 이전부터 국정원과 경찰·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검찰 등 4개 기관이 '대공정보 수사협의체'를 운영해왔다"며 "반기마다 한 번씩 만나서 기관 간에 중복되는 건은 국정원이 조율하고는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 양성에 15~20년 소요 대공수사기법을 암기하면 전수되나"

    염 전 차장은 "국정원에서 제대로 된 대공수사 전문가 한 사람을 키우는 데 최소한 15년에서 20년이 걸린다"며 "간첩을 심문할 때 북측 지도원의 이력과 성격까지 알아야 간첩의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A 전 부서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국가의 안보를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대공수사기법이라는 것이 문서로 써서 그것을 줄줄 외우면 공유하고 전수되느냐"면서 "간첩을 잡는 대공수사는 밀행성·기민성과 극도의 인내가 요구된다. 협의체로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A 전 부서장은 그러면서 "해외 대공수사망과 첩보망은 국가 간, 정보기관 간 공식 채널로 가동되는 것이 아니다. 망이란 공작원이나 협조자 등 사람을 의미한다. 망으로 활용할 그 사람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알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공산세력에 대한 적개심, 또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취약점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망을 구축해 활용하기까지는 개인 간 신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현직자들, 대부분 '대공수사권 존치' 원하지만 文정부 인사들은 '방관'"

    국정원 현직자들은 대체로 대공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는 견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대부분 수사권이 국정원에 존속해야 한다는 분위기이지만, 문재인정권에서 잘나갔던 사람들이 방관하고 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신할 수 없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국정원 대변인실은 "국정원은 소관 법령에 따라 부여된 임무를 충실히 수행 중이고, 대공수사역량이 약화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와 개정 국정원법에 따른 공식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