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공무원 피격' 보도되자… 文정부, 군·국정원에 "유출자 색출" 하달10월 초부터 대대적 합동조사… 일부 관계자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도 실시해
  • ▲ 북한군에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 씨와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지난 7월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영철 전 합참정보본부장에 대한 형사고발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강민석 기자
    ▲ 북한군에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 씨와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지난 7월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영철 전 합참정보본부장에 대한 형사고발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강민석 기자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이후 청와대 국가안보실 지침에 따라 군과 국가정보원이 유출자를 색출하고자 대대적인 보안조사를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가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해상에서 시신이 소각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벌어진 일이다.

    20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이씨 사망과 시신 소각 사실을 인지한 뒤 보안지침을 내린 상황에서 2020년 9월23일 밤부터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자 국가안보실 고위인사로부터 유출자를 색출하라는 취지의 별도 지침이 군과 국정원에 하달됐다.

    23일 오전 1시 서훈 안보실장 주재로 관계장관회의가 열렸고, 오전 3시쯤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 탑재된 군 첩보 관련 보고서 60건과 국정원 첩보보고서 46건이 삭제됐다는 점이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다. 

    삭제된 해당 보고서에는 이씨 피살 및 시신 소각 관련 자료를 포함해 자진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첩보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날 24일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긴급 현안보고를 했는데,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을 통해 "연유를 발라서 태우라고 했다" "우리 군 특수정보에 따르면 북한 상부에서 '762'로 사살하라"고 했다고 한다" 등의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연료기름을 칭하는 연유나 북한의 소총 구경인 7.62mm를 군사용어로 한정해 군사기밀 유출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2020년 10월6일부터 20여 일간 국정원 주관 SI(특수정보) 유출 합동보안조사가 실시됐다. 

    국정원 측은 자체조사를 진행했고, 군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前 기무사)가 해당 첩보를 인지한 군 관계자 27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특히 일부 군 관계자를 대상으로는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 하는 등 고강도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후 군에서는 장성급 2명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 중 한 명은 이씨 피살 관련 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이씨 측 유족으로부터 고발당한 이영철 전 합참 정보본부장(육군 중장)으로 알려졌다.

    이영철 전 본부장, 비밀 엄수 위반으로 징계위 회부… 항고 이후 징계 철회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제공한 이 전 본부장의 징계의결서와 항고심사의결서에 따르면, 이 전 본부장은 2020년 9월24일 국방위 비공개회의 시 특수정보인 '연유'를 위장하지 않고 발언해 비밀엄수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넘겨졌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본부장은 △'연유를 발언한 기억이 없음 △발언했다고 하더라도 첩보로 수집원 원어(原語)가 아님 △당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리라'는 상부의 지침을 받은 상태에서 입수된 정보는 특수정보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등의 취지로 소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 전 본부장은 이에 불복해 항고했다. 그 결과, 국방부 군인징계항고심사위원회는 △특수정보 원문 발췌문서에 '연유'는 발견되지 않았음 △이미 국회 국방위 공개회의에서 여러 특수정보가 언급된 후 보안이 담보된 비공개회의를 하면서 '연유'를 언급한 행위를 징계하는 것은 부당함 △국회 비공개 회의록은 공개되지 않는 자료라는 점에서 특정 단어 사용이 특수정보 누설로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징계처분취소 결정을 내렸다.

    한편, 당시 관계장관회의에 국방부가 "자진월북 시도 가능성,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내용의 종합 분석보고서를 안보실 지시에 따라 작성해 제출하기 전, 해당 지시를 받은 군 실무 관계자들은 '월북으로 볼 수 없는 정황도 있다'는 취지로 저항했으나 묵살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이 지난 18일 서욱 전 국방부장관에 대해 직권남용·허위공문서작성·공용전자기록손상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배경에는 그보다 앞서 조사를 받은 이영철 전 본부장의 일부 의미 있는 진술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