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안동 유림 이야기 듣고 제일 먼저 찾아야겠다 생각"안동 유림, 윤석열 10대조-안동지역 과거 인연 강조하며 尹 지지尹, 곳곳에서 안동 유림 일화 이야기하며 "통합과 협치" 강조
  •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1일 경북 안동을 찾아 안동 지역 유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DB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1일 경북 안동을 찾아 안동 지역 유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DB
    윤석열 대통령당선인이 당선 후 첫 지역 순회지로 경북 안동을 찾은 가운데 윤 당선인의 문중인 파평 윤씨와 안동지역의 인연이 회자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연일 강조하는 '통합과 협치'가 자신의 선조와 안동의 인연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11일 경북 안동 경상북도유교문화회관을 찾아 "저를 안동의 아들, 경북의 아들로 생각해 달라"며 "비록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안동과 경북을 고향과 같이 생각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윤 당선인의 말처럼 그와 안동의 인연은 적지 않다. 파평 윤씨와 안동의 인연은 350여 년 전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尹 10대조 증조부 윤증, 붕당정치 속에서도 협치 강조

    윤 당선인의 10대 종조부인 명재 윤증(1629~1714)은 조선시대 유학자로 소론의 영수로 꼽혔지만 평생 충남 논산에 거주하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임금이 이조참판과 공조판서, 우의정을 제수했으나 모두 맡지 않았다. 

    윤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1년 9월13일 안동을 방문했을 당시, 지역 유림들과 만남에서 윤증이 회자했다. 

    박원갑 경상북도향교재단 이사장은 "사색당파 시절 특히 영남 남인에 대한 탄압이 있었을 때 명재(윤증의 호) 선생이 이를 저지해 몇몇 선비의 문중이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같은 자리에 참석했던 유림들도 "350년 전 윤증 선생에게 진 빚을 이번에 우리가 윤 후보에게 갚아야 한다"며 윤 당선인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의 말처럼 소론의 영수인 윤증은 붕당정치가 극에 달했던 시절에도 탕평을 이야기하던 유학자였다. 예송논쟁과 환국이 발생하던 시절, 윤증은 상대 당파이던 남인과 공생을 주장했다. 

    경신환국 당시에는 집권세력이던 노론이 남인의 숙청을 주장하고 나서자, 윤증이 직접 나서서 3대 명분론을 내세우며 맞섰다. 3대 명분론은 ▲남인과 서인의 화해 ▲정치에 관여하는 외척 축출 ▲ 반대 정파 인사 등용이다. 

    당시 숙청당할 운명이었던 남인들의 본거지가 영남으로, 윤 당선인과 만났던 '안동 유림' 인사들도 이들 남인의 후손들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9월 안동 유림들과 만남 이후 통합과 협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14일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특별고문들과 오찬에서 "지난해 그분들(안동 유림)의 이야기를 듣고 (당선 후) 제일 먼저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윤석열의 통합과 협치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새 정부가 맞이할 여소야대 정국 앞에서 윤 당선인은 특히 협치와 통합의 중요성을 곳곳에서 역설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특히 대선 당시부터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호남지역을 찾아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쳐왔다. 특히 2월18일 대구 방문 당시 호남과 관련한 연설은 정치권에서도 명 연설로 꼽는다. 

    당시 윤 당선인은 "내가 왜 (대구) 달성에 와 광주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민주당이 잘되고 호남도 잘되는 것이 우리 국민의힘에도 좋고, 또 이 달성에도 좋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지난 대선에서 윤 당선인은 직선제 개헌 이후 광주(12.72%)·전남(11.44%)·전북(14.42%)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보수정당 후보가 됐다. 

    윤 당선인의 통합과 협치 행보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더욱 적극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20일과 21일에도 연일 호남 일정을 소화하며 새 정부의 정책구상을 설명했다. 

    이동관 당선인특별고문은 "윤 당선인의 통합과 협치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라며 "윤증 선생으로부터 내려오는 통합 정신이 가풍으로 체화돼 DNA에 각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