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너 김건우.ⓒ강민석 기자
    ▲ 테너 김건우.ⓒ강민석 기자
    "너무 그리웠습니다. 팬데믹 이전 가끔 왔을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이번엔 '드디어 왔구나, 내 조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어요.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계속 노래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해요."

    테너 김건우(38)의 목소리가 3년 만에 고국 무대에 울려 퍼진다. 김건우는 31일 오후 7시 30분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주합창단 제104회 정기연주회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공연하기 위해 지난 22일 한국 땅을 밟았다.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건우는 "2019년 8월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위너스 오페라 갈라콘서트' 이후 한국에서 갖는 정식 공연이에요. 팬데믹 이전·이후나 무대는 늘 같아요. 언제나 어렵고 긴장되죠. 제주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라 설레고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독일 시인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이다. '겨울나그네', '백조의 노래'와 함께 슈베르트의 3대 연가곡으로 불린다. 김건우는 이날 제주합창단과 협연해 수준 높은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2018년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르디의 '레퀴엠'을 협연한 적이 있어요. '레퀴엠'은 합창을 위한 곡인데,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연가곡이라 성격이 달라요. 오케스트라 없이 보통 테너와 피아노로 작업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곡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곡을 무대에선 처음 불러보네요."
  • ▲ 테너 김건우.ⓒ강민석 기자
    ▲ 테너 김건우.ⓒ강민석 기자
    경희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유학한 김건우는 2013년 국립오페라단 콩쿠르 금상, 2015년 몬트리올 콩쿠르 1등, 2016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2등 등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청중상과 함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유럽 오페라 무대에 주역으로 잇달아 초청을 받았으나 그는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선택하며 2017~2019년 활동했다.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시즌마다 15명 안팎의 소수정예로 운영되며 2년에 걸쳐 노래, 연기, 언어 등 오페라 가수로서 필요한 모든 자질을 훈련시켜준다.

    김건우는 2019년 7월 18일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연대의 아가씨' 주인공 토니오 역으로 데뷔했다. 테너로서 극고음을 요구하는 작곡가 도니제티의 오페라로 그는 최고의 음역(하이 C)이 9번이나 나오는 독창곡 '아, 친구여 오늘은 기쁜 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참가자 중 수료 이전에 메인 무대의 주역을 따낸 것은 제가 처음이라 알게 모르게 동료들의 질투도 있었죠. '연대의 아가씨'는 제게 선물 같았어요. 기회가 되면 유럽에서 '사랑의 묘약'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리골레토'요. 작년 스웨덴에서 연기한 적이 있는데 저랑 잘 맞더라고요."
  • ▲ 테너 김건우.ⓒ강민석 기자
    ▲ 테너 김건우.ⓒ강민석 기자
    제주공연에 앞서 김건우는 지난 2월 12~20일 미국 샌디에이고 시빅 시어터에서 4차례 공연된 모차르트 작곡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여자는 다 그래)'의 주인공 '페란도'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는 "작년 7월 영국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페란도'를 연기했어요. 원래 제 배역이 아니었는데, 공연 일주일 전 러시아 배우가 코로나로 입국할 수 없게 된 거에요. 영국 안에서 무조건 배우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제가 소속된 매니지먼트와 연이 닿아 극적으로 캐스팅됐죠"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작년부터 영국 내 방역 규제가 완화되면서 공연장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어요. 관객들이 라이브로 관람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클래식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줬던 것 같아요. 커튼콜에서 박수갈채를 보내주는데 감동적이고 울컥했어요"라고 전했다.

    JTBC 크로스오버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시즌2'가 시작되기 전 섭외가 왔지만 바빠서 거절했다는 김건우는 마지막으로 "정통 오페라만 하고 싶습니다"라며 짧지만 강렬한 한 마디를 남겼다. 오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의 소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건우는 4월 1·3일 각각 부산과 서울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며, 4일 런던으로 돌아가 4월 말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되는 현대오페라 '붉은 방의 꿈' 연습에 집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