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나토, 우크라 전쟁에 군사개입 안 해… 러·중·북엔 용기, 동맹엔 불안 안겨北 “남한 공격 않는 이상 美 군사행동 없을 것” 계산… 핵실험 후 상시도발 가능성
  • ▲ 지난해 10월 북한이 평양에서 개최한 방산전시회 '자위-2021' 당시 전시한 장거리 탄도미사일들. 북한이 아직 시험발사를 하지 않은 미사일은 여러 종류가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10월 북한이 평양에서 개최한 방산전시회 '자위-2021' 당시 전시한 장거리 탄도미사일들. 북한이 아직 시험발사를 하지 않은 미사일은 여러 종류가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지난 24일 평양 순안국제공항 일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27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복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군 당국은 북한이 이르면 4월 말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이처럼 미국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거침없이 도발 징후를 드러낸 적은 사실상 처음이다. 김정은은 무슨 계산을 한 것일까?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시작된 北ICBM 발사… 러시아 도우려던 도발인가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이 지난 2월27일과 지난 5일, 16일 순안공항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신형 ICBM이라고 분석했다. 

    세 차례의 신형 ICBM 시험발사가 실패했지만 북한은 포기하지 않고 순안공항에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3월24일 다시 ICBM을 쏘아 성공했다. 그 종류를 두고 ‘화성-17형’이라는 시각과 ‘화성-15형’이라는 분석이 엇갈리지만 ICBM인 것먼은 확실하다.

    트럼프정부 때부터 바이든정부까지 미국이 북한 도발의 한계선(레드라인)으로 보는 것은 미국 본토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 완성과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대기권 재진입체 개발 성공이다. 특히 ICBM 시험은 미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이 2월 하순부터 벌인 도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미국을 자극할 만한 것이었다는 특징을 보인다.

    2월27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당초 러시아 계획대로라면 키이우 점령 디데이다. 3월5일은 러시아 기갑부대 행렬이 키이우 외곽부터 국경까지 64㎞를 늘어서서 옴쭉달싹 못하는 상황이 드러난 날이다. 3월15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유엔 등에서 러시아의 핵공격 가능성을 경고하는 주장이 나왔다.

    3월24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 사상자 추계를 처음 공개한 날이다. 최소 7000명에서 최대 1만5000명의 러시아군이 숨졌고, 더 많은 장병이 부상했다고 나토는 밝혔다. 러시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을 일으킬 만한 소식이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ICBM 발사를 통해 미국의 이목을 우크라이나에서 아시아로 돌리려 도발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런데 2018년 5월 입구를 폭파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의 복구, 특히 3번 갱도 측면을 굴착해 복구 속도를 높이려는 북한의 행동은 러시아를 위해 미국의 이목을 돌리려는 의도라고 풀이하기 어렵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 준비…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해

    정부는 북한이 이르면 4월 하순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를 끝낼 것으로 본다. 북한이 4월 하순 핵실험장 복구를 끝낸 뒤 소형 핵탄두 실험을 실시하고, 이어 또 다른 도발을 준비한다면 그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째는 러시아와 협의를 바탕으로 미국의 이목을 끌기 위해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러시아·중국·북한·이란은 미국이 두 곳의 전장(戰場)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지 못할 것으로 믿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이 ICBM 발사에 이어 소형 핵탄두 실험까지 한다면 미국 의회가 북한에 강력한 조치를 요구할 것이고, 결국 미국의 관심이 분산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유리한 상황을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휴전협상에서 “동부 돈바스 지역 소유권을 고집하지 않겠다. 중립국도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할 만큼 물러섰고, 러시아도 “우리 목표는 돈바스 지역 분리·독립”이라며 물러섰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돼 양국 간 휴전협상이 타결되면 미국의 관심을 우크라이나-러시아에서 돌릴 필요가 사라진다.

    두 번째 해석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바이든정부의 성향을 분석·판단한 뒤 도발 계획과 일정을 정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군의 약점뿐만 아니라 바이든정부의 특징도 드러냈다. 군사동맹이 아니면 핵우산을 포함한 무력 사용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를 두고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낮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바이든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거부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독일 등 나토 회원국은 물론 대만·일본 등 아시아 동맹에까지 충격을 줬다. 거꾸로 반미 국가에는 용기를 줬다. 

    러시아군이 나토 동맹국 바로 앞까지 쳐들어왔는데도 미국이 군사개입을 않는다는 것은 반미국가가 미국의 동맹국만 공격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의 계산… “유엔 대북제재와 무력 시위 늘려도 별 피해 없을 것”

    이 분석을 북한에 대입하면, ICBM을 쏘든, 핵실험을 하든 한국과 일본을 직접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미국이) 대북 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로 볼 때, 북한이 ICBM 발사나 핵실험 같은 도발을 해도 바이든정부는 기껏해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나 추가하고 항공모함전단과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보내는 ‘무력시위’나 할 뿐 대북 선제타격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텐데 겁먹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미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추가하고, 한미가 F-35 스텔스 전투기와 B-1B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전단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했을 때도 김정은정권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도 중국·러시아 등 반미국가들 탓에 그동안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난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정의용 외교부장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정 장관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현재 미국이 추가적으로 대북제재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며 "미국이 그동안 취한 독자 대북제재도 북한이 전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2017년 北 도발 중단,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때문… 앞으로 '도발의 일상화' 노릴 듯

    김정은이 2017년 11월 ‘화성-15형’ 발사를 끝으로 더 이상의 무력도발을 하지 않은 이유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나 무력시위 때문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예측불가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로 핵공격을 할까 두려워한 미국 당국자들의 요청으로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적극적으로 말렸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반면 바이든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드러났으므로 김정은으로서는 겁을 먹을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최근 나온다.

    김정은이 이런 계산 아래 도발계획을 세운다면, 앞으로 북한의 도발은 ‘일상화’할 가능성이 크다. 즉,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은 물론 북한의 주요 기념일과 6월 지방선거, 22대 총선 등 우리나라 주요 정치일정마다 ‘일상생활’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