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노동자 휴식시간 보장돼 있지만, '구체적 기준' 없어고용노동부, 관리감독 소홀 지적에 "여러 조치 하고 있다"는 답변만
  • ▲ 야외에서 근무 중인 건설 근로자들. ⓒ이태준 기자
    ▲ 야외에서 근무 중인 건설 근로자들. ⓒ이태준 기자
    지난달 26일 건설현장에서 무더위에 야외 작업을 하던 근로자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7월 한 달에만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 추정 사망 건설 근로자가 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 속 건설 근로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본지 기자가 직접 현장근무를 해보았다. 건설 근로자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건설기초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기자는 4일 오전 4시간가량의 교육을 받고 이수증을 받았다.

    건설기초안전교육을 수강하던 중, "현장에 가면 안전화, 안전모, 각반 등은 제공해주는 곳도 있지만 주지 않는 곳도 있다"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지인에게 군화를 빌리고 운동복에 쿨토시까지 장착한 뒤 현장으로 향했다.

    5일 오전 5시 40분. 작업 시작 시각은 7시였지만 건설 근로자들은 아침 식사를 위해 현장을 일찍 도착해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 ▲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건설 근로자들. ⓒ이태준 기자
    ▲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건설 근로자들. ⓒ이태준 기자
    건설근로자 휴식시간, 현행법에도 '구체적 기준' 없어 

    현장근무 시작 시간인 7시가 되기 전, 신규 근로자를 위한 교육장소에서 혈압 측정과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 뒤, 현장에 투입됐다. 근로자들을 이끄는 반장의 지시에 따라 야외 현장으로 이동했다. 외국인 근로자인 A씨가 반갑게 맞이해 줬다. 관리·감독 담당자는 "지게차가 기자재를 놓으면, 밑에 나무 발판을 두면 된다"고 설명했다.

    작업은 60분가량 진행됐는데 휴식할 틈이 안 보였다. A씨에게 "휴식시간을 부여받는 것으로 아는데, 따로 정해진 시간은 없느냐?"고 물었다. A씨는 "정해진 시간은 따로 없다. 반장·팀장에 따라 다르다"며 "담배를 피우면, 막간을 이용해 잠깐 흡연을 하면 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산업안전보건규칙이 개정돼 사업장은 '적정한' 휴식을 근로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고용노동부에서 작업 중지를 포함한 형사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적절한 휴식'의 기준이 모호한 탓에 현장에서는 이를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A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조금 어색함이 사라질 때쯤 팀장이 "조공, 따라와"라고 지시했다. '조공'이란 각 분야의 기공을 도와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기공'은 기계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노동자라는 뜻이다.
  • ▲ 지하 3층에 위치한 건설 현장의 건설 근로자 휴게실. ⓒ이태준 기자
    ▲ 지하 3층에 위치한 건설 현장의 건설 근로자 휴게실. ⓒ이태준 기자
    "8층에서 일하는 야외 근로자는 어디서 쉬나요?"… "휴게실은 지하 3층에 있습니다"

    이동한 현장은 8층 높이의 야외였다. A씨와 일을 할 때는 근처 아파트 그늘이 있어 이를 버팀목 삼아 잠시 휴식을 취했지만, 8층 야외에서는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근로자들은 안전모 겉에 '쿨워머'를 부착해 햇빛을 피하기도 하고, '넥워머'로 목을 감싸며 자외선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더위에 지친 근로자들은 옥상의 따가운 햇볕을 피해 아래층으로 내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올라왔다. 함께 근무 중인 B씨에게 "여기(8층)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는 어디에서 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B씨는 "야외 근로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은 따로 없다"며 "지하로 내려가면 휴게실이 있긴 하다"고 답했다.

    B씨의 말대로 휴게실은 지하 3층에 있었다. 지상에서 근무하는 건설 근로자들은 오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휴게실에는 근로자들을 위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냉장고에는 물병이 하나도 없었으며, 선풍기·에어컨과 같은 냉방기구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4도로 '폭염경보' 상태였다.
  • ▲ 건설 현장을 방문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 건설 현장을 방문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관리감독 소홀" 지적에… 고용노동부 "여러 조치 하고 있다"는 답변만

    일을 마친 후 기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에게 "건설 근로자를 위한 입법지원이 미비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임 의원은 "현장에서 규정을 지키도록 하는 근로감독이 중요하다"며 "지도점검 등 단속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에 이야기를 하겠다"고 답했다.

    임 의원은 "폭염 속에서 일하기 정말 힘들다. 사람이 살자고 하는 일이다. 아침시간을 당겨서 일하고, 오후 근무를 늦춰서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핑계를 대면서 (현장 관리 감독을) 제대로 안 하고 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라며 고용노동부를 비판했다.

    정부 측 입장을 듣기 위해 고용노동부 정경훈 대변인에게 "폭염상황과 관련해 건설업 현장실태를 점검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정 대변인은 "저희들이 재해중심으로 해서 제조업·건설업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들(폭염관련된 상황)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해라는 것이 그동안 폭염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발생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사업장을 통해서 여러 가지 조치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오늘도 장관님이 물류센터 폭염 대응상황을 점검하러 오후 3시에 가셨다. 최근 폭염 때문에 점검하고 있다"고 밝힌 정 대변인은 "거기에 대한 예방수칙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러 가지가 있기에 필요에 따라서 대응하고 있다. 1년 내내 점검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 ▲ 건설 현장을 방문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폭염뿐 아니라 혹한 대비 정책도 필요… 옥외 작업자 포함한 산재대책 시급"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선임연구원에게 "건설 근로자들을 위한 입법이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에 발생하는 문제점도 고려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름이 되면 무더위가 있지만, 사실은 겨울도 있다"며 "폭염이나 혹한처럼 일정 온도 이상, 영하 몇 도 이하 때에는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인한 사망이 다수 발생하기에 노동환경에서 작업 중지, 잠시 멈춤, 쉴 권리가 이런 차원에서 다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건설 일용직뿐만 아니라 옥외 작업자들을 포함한 산재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설 일용직 뿐만 아니라 야외 작업자들이 많다"며 "옥외 작업이라고 표현되는 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업무작업 중지, 휴식시간과 관련된 산재 예방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업은 일당제로 운영돼 오후 1~3시에 쉬어도 큰 작업공간에서는 임금을 깎지 않는다"며 "그런데 시급으로 운영되는 야외작업장은 오후 3시간 동안 쉬게 하더라도 일을 안 했으니 임금지급이 안 되는 작업장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설 작업자뿐만 아니라 야외 폭염에 일하는 다수 직업군이 있기에 거기에 맞는 점검사항과 현장 맞춤형으로 정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기자가 건설 근무를 체험한 5일 오후, 마침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폭염 대응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물류센터를 방문했다.

    안 장관은 "폭염이 가장 심한 기간인 만큼 충분한 생수의 제공과 규칙적으로 쉬는 것이 중요하다"며, "열사병 예방을 위한 작업환경 조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5일부터 20일까지 폭염 대응 특별주간으로 지정해 열사병 예방 사업장 지도 감옥을 강화하고 폭염 위험상황에 대한 특별신고를 받아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