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한겨레 칼럼 쓰던 김우재 "과도한 간섭에 질렸다" 필진 사퇴 입장 밝혀
  • ▲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가 한겨레 칼럼 기고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글. ⓒ김우재 페이스북
    ▲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가 한겨레 칼럼 기고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글. ⓒ김우재 페이스북
    2013년부터 한겨레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가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한 자신의 글이 게재 거부를 당하자 "한겨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며 칼럼 기고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어제 보낸 글을 게재할 수 없다'는 한겨레 편집국의 결정을 통보받았다"고 밝힌 김 교수는 "목수정 씨 관련 게이트키핑 이후 계속되는 칼럼 내용 및 방향에 대한 과도한 간섭에 질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겨레에 쓴 글들로 과학자의 시선을 한국사회에 많이 알릴 수 있었고, 그런 글들로 욕도 많이 먹고 고소도 당했다"면서 "이제 한겨레와 저의 시각과 관점은 꽤 많이 갈라진 것 같다. 앞으로 저는 저의 길을 가겠다"고 덧붙였다.

    "노무현을 위해 저금통을 털었던 순수한 열망 사라져"


    김 교수가 한겨레 편집국으로부터 게재 거부를 당했다는 칼럼은 더불어민주당을 가리켜 "선거결과와 여론조사를 쳐다보며 계산기만 두들기는 무능한 여당"이라고 꼬집는가 하면 "청와대는 국민의 희망과 꿈을 읽지 못하고 과거와 투쟁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는 식으로 정부와 집권여당을 향한 쓴소리를 담아낸 글이었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김대중의 연설을 듣기 위해 여의도에 운집했던 100만의 민중과, 노무현을 위해 저금통을 털었던 그 순수한 사람들의 정치적 열망은, 어느새 모두 진영구도로 환원돼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며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실패는, 국민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꿈을 보여주지 못했다는데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김 교수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에 대해서는 최근 방송토론에서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상대편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인 사실을 거론하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 후보에게 정치적 비전이나 정치철학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도 "사람들이 이준석 열풍에 동의하는 데에는, 그가 지난 10년간 살아온 정치인으로서의 치열한 경험이 녹아 있다"며 "나이로도, 실력으로도, 진보진영의 청년정치가 이준석 한 명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 준엄한 사실을,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한편, 한겨레 편집국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담당자가 처음부터 필자에게 칼럼을 게재할 수 없다고 한 게 아니라, 김씨가 글에 대한 수정 요청을 거절했다"며 "여러 대목에서 논리 비약이나 근거가 충분치 않은 부분에 보완을 요청했으나, 거의 한 대목도 수용되지 않아, 국장단 회의 끝에 '수정할 수 없다는 글을 그대로 게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김 교수의 칼럼이 게재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겨레 미게재 원고 전문.

    이준석 너머

    김영삼은 25세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불과 15년 전, 열린우리당은 소위 탄돌이라 불리는 386세대 학생 운동권을 대대적으로 공천, 무려 108명의 국회의원을 초선으로 채웠다. 나이로만 따지면, 류호정, 장혜영, 이준석 모두 한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세대에게 새로운 정치적 경험은 아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새로움을 가장하기 위해 생물학적 나이를 도용하는건 낡은 우생학적 전략이다. 젊은 나이가 기존의 기득권과 구별되는 차이로 쉽게 부각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새로움으로 연결되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렇게 물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준석이 만들고 싶은 국가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명박, 박근혜로 경직된 그 당에 존재하면서 얻는 반사적 이익 외에, 이준석이 정치인으로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추구해온 정치철학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는가. 각종 방송에서 반대세력과 아군을 따끔하게 비판했던 방송인으로서의 활동 외에, 그만의 정치적 비전은 무엇인가. 상대적으로 젊다는 걸 빼면 기억나는 것이 없다. 이른 나이에 정계에 입문해서 남들보다 정치적 계산이 빠른 정치기술자가 되었다는 것 외에, 이준석을 표현할 단어를 떠올리는 일은 힘들다.

    민주당은 더욱 처참하다. 탄돌이 세대에 막혀 정계 진입이 좌절된 70년대생 가운데 살아남은 몇몇 정치인들은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386 막내가 됐고, 일찌감치 정치적 경험과 자산을 독차지했던 386세대가 당을 장악하고 그 어떤 혁신적 대안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선거결과와 여론조사를 쳐다보며 계산기만 두들기는 무능한 여당이 되었다. 국민이 만들어준 180석의 염원을 제대로 읽는 국회의원 한 명 없이,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을 국민의힘에 어이없이 넘겨주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이준석이라도 껴앉으려는 정당과, 국회의원직 유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정당, 그게 작금의 한국 정치다.

    그나마 희망을 보여줘야 할 정의당의 전략은 구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청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이 구걸의 정치는 여성할당제와는 맥이 다르다. 역사적으로 청년정치가 탄압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근대 이후 세계의 대부분 국가에서, 청년 정치는 꾸준히 추구되고 실험되었으며 오히려 장려되었다. 문제는 청년 정치를 아무런 맥락 없이 기계적으로 도입하려는 정의당의 현실왜곡에 있다. 류호정과 장혜영의 영입에 얼마나 치열한 정당으로서의 고민이 있었는지 반성하지 못한다면, 청년정의당으로 청년 장사나 하는 정의당엔 희망이 없다.

    그나마 사람들이 이준석 열풍에 동의하는 데에는, 그가 지난 10년간 살아온 정치인으로서의 치열한 경험이 녹아 있다. 류호정과 장혜영의 정치엔, 이준석을 비판할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나이만 비슷할 뿐이다. 최근 방송토론에서 페미니즘 시장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정치인 신지예는, 이준석의 데이터와 치밀한 반론에 막혀 조롱만 당했다. 나이로도, 실력으로도, 진보진영의 청년정치가 이준석 한 명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 준엄한 사실을,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정치인과 함께 꿈을 꾸지 못했다. 김대중의 연설을 듣기 위해 여의도에 운집했던 100만의 민중과, 노무현을 위해 저금통을 털었던 그 순수한 사람들의 정치적 열망은, 어느새 모두 진영구도로 환원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실패는, 국민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꿈을 보여주지 못했다는데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 요란했던 4차산업혁명의 구호와 검찰개혁이라는 이념에 공명한 국민은, 반의 반이 채 되지 못했다. 그 어느때보다 여론을 파악할 데이터가 많은 시대인데도, 청와대는 국민의 희망과 꿈을 읽어내지 못하고 과거와 투쟁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정치는 함께 꾸는 꿈이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한국의 모습은 무엇인가. '청년'의 정치가 아니라, 더 '젊은' 한국을 만들기 위한 철학을 보고 싶다. 거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 김우재, 낯선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