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으로 기존 대학 지원하는 게 낫다"… '한전공대특별법' 상임위서도 후순위로 밀려
  • ▲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설립을 두고 지역 선심성 사업·재정 낭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 조감도.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설립을 두고 지역 선심성 사업·재정 낭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 조감도.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설립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역 선심성 사업, 재정 낭비라는 비판에 '한국에너지공과대학법(한전공대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방대 소멸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학 설립은 불필요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한전공대' 설립에 들어갈 비용을 기존 대학 지원에 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난 22일 '한전공대특별법'을 처음 논의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위원회에서는 여야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소위원회의 경우 의원들 간 전원 합의가 있어야 상임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

    산자위 소속 의원들은 이 법안을 '계속 심의' 건으로 확정하고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추가 심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한전공대특별법'은 의원 51명의 제안으로 지난해 10월15일 발의된 후 4개월 넘게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항을 겪는 중이다.

    '한전공대' 설립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출발한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내년 3월 설립을 목표로 했지만, 현행 사립학교법이나 고등교육법을 적용할 경우 개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전공대특별법'에는 학교 설립 기준을 완화하는 '특례규정'이 담겼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다른 법률 규정에도 한전공대의 설립과 운영을 위해 국유재산을 무상으로 대부하거나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학교의 자율성·창의성을 보장하기 위한 운영 근거도 포함됐다.

    전기세 떼어내 설립 비용 충당… "차기 대선서 호남 표 얻기용"

    여당은 '한전공대특별법'에 목을 매지만, 야당은 지역 선심성 사업에 재정을 낭비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회 법안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한전공대' 설립과 이후 10년간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총 1조6000억 원에 이른다. 한전은 이 비용을 자회사 6곳 등 전 그룹사에 분담 출연시키고, '한전공대'가 세워질 전라남도와 나주시에서도 매년 200억원씩 10년간 총 2000억 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부채가 131조원에 달하는 한전이 굳이 '한전공대'를 설립하고 운영비용까지 감당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12일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한전공대 설립 및 운영 비용을 충당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을 공포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의 3.7%를 떼어내 조성하는 기금이다. 2001년 설치된 이 기금은 당시 정부가 한전의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한전이 기존에 담당하던 전력산업 발전, 도서·벽지 전력 공급 및 지원 등 각종 공적사업을 유지하고자 만들었다. 모든 국민이 내는 전기료에서 일부를 떼어내 조성한 만큼 일종의 '준조세'에 해당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권이 '지역 공약'을 지키기 위해 '준조세'인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쌈짓돈처럼 쓰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력산업기반기금 누적 적립액은 2019년 말 기준 4조3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한전공대 개교 시기가 차기 대선이 치러지는 내년 3월인 점도 호남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라는 의심을 들게 한다.

    이와 관련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통화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우리 국민과 기업들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국민들이 낸 전기세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선심성 선거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과 지원에 쓰면 안 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하는 한전공대 설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한전공대 설립비용, 기존 대학 지원에 써야"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현 시점에 새로운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지난해 전국 223곳의 4년제 대학 신입생 미충원 현황자료를 살펴보면 1만1002명의 결원이 발생했다. 특히 지방대 139곳에서 8531명의 결원이 생겨 전체의 77.5%를 차지하고 있다.

    학생 수 감소에 수도권 쏠림현상까지 겹치면서 지방대의 위기가 심화하는 것이다. 전남 나주에 지어질 한전공대도 이러한 문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지방의 한 국립대 A교수는 통화에서 "대전의 KAIST, 대구의 DGIST, 광주의 GIST 등 기존 이공계 특성화대학에 이미 에너지 관련 학과가 존재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데, 그 엄청난 금액을 써서 굳이 한전공대를 세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그 비용을 지방대나 지금 있는 에너지학과에 투자한다면 더 많은 학생과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