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파문 후 중앙아시아로 건너가 활동휴양 도시 '유르말라'에 저택 구입‥ 현지 거주 타진
  • 2017년 '미투(me too)' 가해자로 몰린 뒤 주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권에 머물며 영화 작업을 해온 김기덕(60·사진) 감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러시아 관영 타스(TASS)통신과 발트 지역 언론 델피(Delfi)에 따르면 김기덕 감독은 지난 11일 새벽 1시 20분께 라트비아(Latvia)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에스토니아(Estonia)를 거쳐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한 김 감독은 현지에 거주 중인 비탈리 만스키(Vitaly Mansky) 감독과 지난 5일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연락이 두절돼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 감독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만스키 감독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김 감독이 숨진 사실을 확인했다.

    라트비아에 도착한 후 코로나19 증세가 생겨 지난 9일 병원에 입원한 김 감독은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돼 입원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영주권 취득 목적으로 라트비아 입국


    김 감독의 사망 사실을 최초로 외부에 알린 만스키 감독은 "김기덕 감독이 평소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겹치면서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스키 감독은 "김 감독이 라트비아 북부 휴양 도시 유르말라(Jurmala)에 저택을 구입하고, 라트비아 영주권을 획득할 목적으로 왔다고 지인들에게 들었다"고 덧붙였다.

    2017년 성추문에 휩싸인 후 국내 활동을 중단한 김 감독은 키르기스스탄의 평론가 굴바라 톨로뮤소바의 도움으로 중앙아시아로 건너가 영화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제41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고, 올해는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어 영화 '디졸브'를 촬영하기도 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김 감독의 유족(아내와 딸)은 코로나19로 출국이 어려운 점을 감안,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에 김 감독의 장례 절차를 위임하기로 했다.

    이에 한국대사관은 병원으로부터 사망증명서를 발급받는 대로 유족과 위임 계약을 맺고 화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고인의 유골이 국내로 송환되기까지는 일주일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여배우 A씨 "대본에 없던 베드신 강요"


    1996년 영화 '악어'로 영화계에 데뷔한 김 감독은 충무로에서 파격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여성에 대한 가학적인 장면이 수시로 등장해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반응 속에서도 그가 연출한 영화는 언제나 해외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다.

    그는 국내 유수 감독 중에서도 유독 상복이 많은 감독으로도 유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 본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감독이 바로 김기덕이고, 2012년 베니스영화제에선 영화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여배우 A씨가 "김 감독이 뺨을 때리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며 폭행 및 강요,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김 감독을 고소하면서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2017년 12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강요·명예훼손·강제추행치상 혐의에 대해선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리고, 뺨을 때렸다는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벌금형(500만원) 처분(약식기소)을 내렸다. 또 모욕 혐의의 경우 고소기간 6개월이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2018년 3월 MBC 'PD수첩('거장의 민낯' 편)'이 "당시 A씨는 김기덕 감독이 요구한 '성관계'에 응하지 않아 폭행을 당한 것이고, 대본 리딩날 김 감독이 '다른 여성과 셋이서 함께 성관계를 맺자'는 제안을 했다는 등 김 감독의 충격적인 사생활을 폭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날 방송에는 복수의 여배우들이 직접 출연해 김 감독에게 성적 폭력을 당했다며 촬영장 안팎에서 겪었던 다양한 피해 사례를 증언했다.

    검찰 "여배우 고소, 허위로 볼 증거 없어"


    이 방송으로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김 감독은 2018년 6월 A씨 등 여배우 2명과 MBC 'PD수첩' 제작진을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같은 해 12월 "A씨의 고소가 허위라고 단정할 증거가 없고, 'PD수첩' 역시 허위사실을 방영했다고 볼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김 감독은 지난해 2월 한국여성민우회가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측에 자신이 연출한 영화(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 초청을 취소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 자신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며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김 감독은 같은 해 3월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A씨와, A씨의 주장을 가감 없이 보도한 MBC를 상대로도 1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에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는 지난 10월 김 감독이 A씨와 MBC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도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