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가디언' 3개월 잠입취재… 중국 단둥지역 방역용품업체 대북제재 위반 밝혀내
  • ▲ 아침 단체로 출근하는 중국 단둥 파견 북한 근로자들. 맨 뒤 남성들은 감독관으로 추정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침 단체로 출근하는 중국 단둥 파견 북한 근로자들. 맨 뒤 남성들은 감독관으로 추정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한코로나(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이후 영국·한국·미국·일본 등이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 중인 개인방역용품(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북한 근로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만든 물건이라고 영국의 가디언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업체들, 월급 70% 김정은에 원천징수당하는 북한 근로자들 대량고용

    가디언은 “영국 보건사회보장부(DHSC)가 수십만 개의 방역복을 중국에서 수입한 것과 관련해 단둥에서 석 달 동안 잠입취재한 결과 북한 근로자 수백 명이 중국에 끌려와 노예노동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생산한 방역용품이 한국·미국·일본·독일·영국·이탈리아·남아공·필리핀·미얀마로 수출된다는 증거를 확보했다”며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중국 단둥 소재 방역용품 공장에서는 최소 수백 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한다. 한 공장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이 여성인 북한 근로자들은 항상 북한이 보낸 감독관의 감시를 받으며 하루 18시간 휴일도 없이 일한다. 마음대로 공장을 나갈 수도 없다.

    “문서상으로는 북한 근로자들이 2200~2800위안(약 37만2700~47만4300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몇백 위안(몇 만원)뿐”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월급의 70% 이상을 감독관이 먼저 징수해 김정은 정권에 송금한다”고 공장 관계자가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빼앗기고 받는 금액도 북한에서 벌 수 있는 돈보다 많기 때문에 이런 현대판 노예노동이 가능한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북한 근로자 노예처럼 부려 돈 버는 중국… 그 제품 싸다고 수입하는 서방국가들

    김정은정권이 북한 여성근로자들을 중국에 보내 노예노동을 시키면 가장 이익을 보는 것은 중국 방역용품업체들, 특히 중국 단둥에 밀집한 업체들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들 업체는 “올 상반기에만 2100만 개 이상의 방역용품을 생산·수출했다고 단둥시가 밝혔다”면서 “한 방역업체 소유주는 올 들어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고 자랑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 ▲ 지난 2월 5일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 쌓여 있는 KF94 마스크 박스. 이후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자 중국산 마스크가 국내에 대량으로 유통됐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월 5일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 쌓여 있는 KF94 마스크 박스. 이후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자 중국산 마스크가 국내에 대량으로 유통됐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문에 따르면, 올 초 세계적으로 우한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자 단둥시에 있던 의류업체들은 의료용 가운, 방역복 등 개인방역용품업체로 업종을 전환했다. “14개의 단둥 소재 기업이 이때를 계기로 미국 식품의약품관리국(FDA)에 생산품을 등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단둥시와 랴오닝성이 이들의 업종전환을 지원했다고 한다. 단둥 소재 업체들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들여와 저가의 방역용품을 생산하고, 김정은정권은 그 대가로 수백만 달러씩을 매달 챙기는 ‘공생관계’가 만들어졌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신문은 “영국 보건사회보장부도 '유니스페이스글로벌'이라는 업체를 통해 '단둥화양방직회사’가 만든 수십만 벌의 방역복과 그보다 많은 수의 방역용품을 수입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유니스페이스글로벌은 이제 영국의 방역용품 조달업체 가운데 가장 큰 업체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중국산 방역제품 구입했다 김정은에 돈 보탠 꼴… 미필적 대북제재 위반

    신문은 “긴급조달이 필요할 경우 정부가 공개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물품을 조달할 수 있다는 법규를 바탕으로 올 들어 수십억 파운드(수조원)의 방역용품을 수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책임성과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취재 결과 영국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김정은정권의 주머니에 넣어준 꼴이 됐다”고 보건사회보장부를 비판했다.

    신문은 “지난 4월에는 이탈리아 바리공항에 단둥화양방직 상표가 붙은 방역복 20만 벌이 도착했고, 남아공의 한 유통업체도 이 회사 방역복 200만 벌을 판매한다고 광고했으며, 미국·한국·일본에서도 해당 업체 제품을 소규모 주문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다른 서방국가들에서도 영국과 비슷한 사례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방역용품을 수입한 것이 결과적으로 김정은정권에 자금을 보탠 셈이 됐다는 게 신문의 지적이다.

    실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2월22일 김정은정권이 해외에 파견한 북한 근로자의 고용을 금지하고 기존에 해외로 나갔던 북한 근로자들도 모두 귀국시키도록 하는 내용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들이 급여 대부분을 김정은정권에 빼앗기거나 상납하고, 그 자금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보도대로라면 그동안 대북제재 결의를 주도하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북핵 관련국 모두 직·간접적으로 김정은정권을 도움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