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억 예산 쏟아붓고도 폭우 등으로 훼손된 문화재 해마다 증가… 문화재청 '안전점검' 부실론 부각
  • ▲ 지난해 10월 4일 제18호 태풍 '미탁'으로 사적 502호 경주 불국사 충지단 뒤편 화장실 담장이 붕괴한 모습. ⓒ연합뉴스
    ▲ 지난해 10월 4일 제18호 태풍 '미탁'으로 사적 502호 경주 불국사 충지단 뒤편 화장실 담장이 붕괴한 모습. ⓒ연합뉴스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존·관리 및 방재시스템 구축을 위해 매년 6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자연재해로 훼손된 문화재 피해 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어 국민의 세금이 허투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 보존·관리와 방재를 위한 예산은 지난해 5859억원에서 올해 6535억원으로 676억원 증액됐고, 내년에는 218억원이 늘어난 6753억원으로 책정됐다.

    그러나 올해 자연재해로 인한 문화재 피해 건수는 지난 9월 기준으로 89건으로 집계돼 지난해 수준(88건)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17년 22건에 불과했던 문화재 훼손 건수가 3년 만에 4배로 급증함에 따라, 문화재 손실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17년 22건이던 문화재 훼손, 지난해 88건으로 급증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고창 선운사 대웅전(보물 제290호), 부산 범어사 대웅전(보물 434호) 익산 미륵사지(사적 150호), 남한산성 행궁(사적 480호), 낙안읍성(사적302호), 불국사(사적 502호) 등 중요 문화재 다수가 태풍 및 강풍 등으로 기와 파손, 성벽 붕괴, 지붕 누수 등의 피해를 입었다. 올 여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인 충남 공주 공산성 성벽이 폭우에 10m 가량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훼손된 문화재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북이 47건(21%)으로 지자체 중 1위를 차지했고, 전남 41건(18%), 충남 경남 22건(10%) 충남 20건(9%)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는 1건으로 대전과 함께 최하위를 기록해 지역에 따라 훼손 건수도 큰 차이를 보였다.

    심각한 점은 보수 이후에도 같은 피해가 매년 반복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경주 불국사의 경우 지난해 태풍으로 큰 피해가 발생해 약 1억2000만원의 긴급보수비가 지원됐는데, 올해 또다시 태풍으로 피해가 발생해 현재까지 보수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호우 피해로 1000만원의 긴급보수비가 투입된 고창 선운사 대웅전도 올해 다시 호우 피해를 입어 복구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까지 안전점검 이어져… 7월말 닥친 '폭우'로 피해↑"


    문화재의 방재·전기·가스 설비나 석축·배수로 관리 상태 등을 살펴보는 '계절별 풍수해 안전점검'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의 경우 문화재청이 7월 10일까지 안전점검을 벌이는 바람에 막상 7월말 국지성 폭우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7~2018년의 경우 6월말까지 안전점검을 끝낸 뒤 문제점이 발견된 문화재들을 보수해 태풍이나 폭우 등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6월 10일부터 시작한 안전점검이 7월까지 이어졌고 한창 보수가 진행될 때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문화재청이 문화재 점검대상을 적게 잡아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가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지난해의 경우 재해로 인한 문화재 훼손은 88건에 이르렀지만 사전점검대상은 25개소, 문제점이 지적돼 보수 작업을 벌인 문화재는 9개소에 불과했다. 올해는 문화재 70개소를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벌여 39개소를 보수했다.

    문화재청 "자연재해 발생 건수와 문화재 피해 건수 비례"


    이와 관련, 문화재청 관계자는 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장마 대비 안전점검 시기가 다소 늦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에 "국가지정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매년 분기별로 방재설비, 배수로 상태 등을 점검하는 예방활동을 벌인다"며 "올해는 여름철 대비 성격으로 점검한 게 6월 10일부터 7월 10일까지였는데, 이미 지난 3월에 봄철 대비 점검을 한 상태라 시기상 늦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 '피해 건수'가 대폭 늘어난 것은 상대적으로 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한 탓이 크다"며 "특히 올해는 장마기간이 길어져 물을 많이 먹은 기왓장이 무너져 내리거나, 나무가 넘어져 담장이 훼손되는 등의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불국사 등 일부 문화재가 매년 반복해서 재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국사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 작년에 기왓장이 흘러내리는 피해가 발생했다면 올해는 담장에 금이 가고 석축 일부가 붕괴되는 식"이라며 "매년 같은 자리가 피해를 입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예지 의원은 "문화재청은 문화재에 대한 세밀한 관리를 통해 사각지대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문화재 훼손은 오히려 급증했다"며 "자연재해로 인한 훼손은 예방을 통해 피해를 감소시킬 수 있는 만큼, 문화재청은 예방점검 내실화 등 관련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