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망' 이후 진상파악 없이 수사 종결, 서울특별시장(葬)… 정치·법조계 "피해자 '2차 가해' 우려"
  • ▲ 한 시민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고인의 장례는 사상 처음으로 5일간 서울특별시 장으로 치러진다. ⓒ사진=서울시
    ▲ 한 시민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고인의 장례는 사상 처음으로 5일간 서울특별시 장으로 치러진다. ⓒ사진=서울시
    성추행 의혹을 받다 숨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가 철저한 진상 파악도 없이 고인의 죽음을 '미화'하는 듯한 장례를 주관함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에 아픔을 더하는,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박원순 시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게 하라"는 청원글이 하루 만에 38만여명의 동의를 얻었고, 정치권에선 "빈소를 조문하지 않겠다"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법조계에선 "서울시가 장례 절차를 재검토하고 즉각 진상 규명과 손해배상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희롱의 대상'이었던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정치권에서 '빈소 거부' 의사를 처음 밝힌 인물은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이다. 그는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신이 외롭지 않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류 의원은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프고, 유가족분들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도 "저는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류 의원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사람들의 애도 메시지를 보고 읽으며 고인께서 얼마나 훌륭히 살아오셨는지 다시금 확인하고 있지만, 당신(고소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존경하는 사람의 위계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롱의 대상이 돼야 했던 당신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비로소 고소를 결심할 수 있었던 당신이, 벌써부터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네 잘못이 아니야' 영화 '굿 윌 헌팅' 속 등장인물 숀이 주인공 윌에게 전한 말"이라며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다시 회자됐던 이 말을, 닿을지 모르는 공간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오늘의 충격에서 '나의 경험'을 떠올릴 당신들의 트라우마도 걱정"이라며 "우리 공동체가 수많은 당신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2차 피해를 막을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애도할 수 없다"


    같은 당 장혜영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에 조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장 의원은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며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이 아무리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 해도,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문제를 제기했지만 수사를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며 "그렇게 이 이야기의 끝이 '공소권 없음'과 서울특별시의 이름으로 치르는 전례 없는 장례식이 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어렵게 피해를 밝히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마음을 돌보기는커녕 이에 대한 음해와 비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조한 장 의원은 "전례 없이 행해져야 하는 것은 서울특별시장이 아니라 고위공직자들이 저지르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철저한 진상파악이고 재발방지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특별시장(葬),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나는 일"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도 박원순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 기관장'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 의원은 10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슬픔과 진실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국가장은 그 법의 취지에 따라 국민적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했을 때 치러지지만 이번은 사안이 다르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의혹에 대한 명확한 진실 규명이 안 된 상태에서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른다면 피해자가 느낄 압박감과 중압감은 누가 보상하나"라며 "이는 정부 여당이 줄곧 주장했던 피해자 중심주의에도 한참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서울시가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국민적 공감대를 모을 겨를도 없이 일사천리로 장례를 결정한 것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법적 근거도 없는 장례식 대신 피해자가 몇명인지, 피해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2차 가해를 막을 방법이 뭔지부터 먼저 발표해달라"라고 요청했다.

    "본질은 성추행 범죄 피의사건, 반드시 진상 규명해야"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으로 피해자의 절규가 묻혀서는 안 된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박 시장의 장례절차를 재검토할 것을 주문하는 성명을 냈다.

    한변은 "대한민국 수도의 시장이 자살을 하였다는 충격적인 사실 자체는 시장 개인을 떠나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불행"이라면서도 "본질은 엄중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범죄 피의사건으로, 피해 여성 일터인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위 혐의에 대해 공모하거나 방조한 바가 없는지 수사가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은 가해자 본인은 물론 서울시청, 불법행위 관련자 모두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건 진실을 수사 기관과 법정에서 끝까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시는 여성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인데도 진상을 은폐하고 보란 듯이 고인의 죽음을 미화하는 듯한 장례를 주관하며 피해 여성이 받을 고통까지 외면하고 있다"며 "장례 절차를 재검토하고 진상 규명과 손해배상 절차에 착수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시장의 전 여비서 A씨는 지난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성추행 혐의로 박 시장을 고소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A씨는 고소 직후 이튿날 새벽까지 경찰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0일 오전 0시 1분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숙정문 인근에서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 사건은 하루 만에 수사가 종결됐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에 따르면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도록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