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지난해 이어 9일에도 '기부금품법 개정안' 국무회의 상정 돌연 연기… "시민단체와 이해관계 있다"
  • ▲ 시민단체 '시민과함께'는 지난달 19일 정의연 전 이사장인 윤미향과 현 이사장인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한경희 씨를 업무상 배임, 횡령죄 및 사기죄, 강요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종현 기자
    ▲ 시민단체 '시민과함께'는 지난달 19일 정의연 전 이사장인 윤미향과 현 이사장인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한경희 씨를 업무상 배임, 횡령죄 및 사기죄, 강요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종현 기자
    시민단체의 기부금 모금활동 투명성 강화를 위한 관련 법령이 2년간 표류 중이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기부금 유용 논란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까지 투명성 강화를 약속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시민단체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결국 관련 법령의 핵심인 기부금 관련 의무공개 조항은 삭제됐고, 개정작업은 또 다시 미뤄졌다.

    행정안전부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기부금품법)' 개정안을 9일 국무회의에 상정하려다 돌연 연기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예정됐던 보도계획 취소를 공지하며 "조문 수정으로 (기부금품법 개정안이) 국무회의 안건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기부자들이 기부금품을 받은 단체에 사용명세 공개를 요청할 때 이를 공개하도록 한 규정 신설을 두고 마찰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2년 표류' 기부금품법 시행령… 국무회의 상정 돌연 취소

    정부는 2018년 일명 '어금니 아빠'로 불린 이영학의 후원금 유용, 기부금을 호화생활에 쓴 엉터리 시민단체 '새희망씨앗' 사건 등을 계기로 기부 투명성과 기부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그해 12월 처음 입법예고했다. 이후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를 거치며 모집자는 기부자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해당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의무규정이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기부금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한다고 예고했으나, 당시에도 갑자기 안건에서 제외했다. 시민단체들이 7일 이내 공개 규정을 지키기 어렵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것 역시 과하다고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후 행안부는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7일 이내'를 '14일 이내'로 완화해 지난해 12월 다시 입법예고했다. 특히 '기부자 요청시 정보 의무공개' 부분은 '기부자는 모집자에게 기부금품 모집·사용 관련 장부 등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수준에 그쳤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 4일 차관회의를 통과해 9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안부는 조문을 재수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또 다시 연기했다. 개정안 상정을 재차 연기한 이유로 행안부는 시민단체와 마찰을 들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10일 본지와 통화에서 "조문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논의를 거쳐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면서도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내용을 수정해서 다시 국무회의에 올라갈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시민단체와) 이해관계가 있어서 그 부분을 원만히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부금 투명성 강화를 위한 개정안이 2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한 것도 모자라 결국 당초 취지마저 흐려지게 된 셈이다. 정부가 시민단체 눈치를 과하게 본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기부금 의무공개' 조항 삭제… "시민단체 눈치 과하게 본다"

    정의연 전·현직 이사장을 횡령·사기·강요 혐의로 고발한 시민단체 '시민과함께'의 법률대리인 유정화 변호사는 "정의연부터 시작해 기부금품법이 광범위하게 문제가 되고, 향후 문제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데도 시행령 준비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 변호사는 "의무공개와 관련한 국민의 거센 요구가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를 미룰 경우 명확한 처리 시한과 계획에 대한 적극적인 발표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이런 업무처리가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의심과 비판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눔의집 후원금 반환소송을 맡은 김기윤 변호사는 "기부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부자들이 안심하고 기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런 첫 번째 요소가 기부받는 단체에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언제든 알 수 있게 공개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기부한 사람은 알 권리가 있다"면서 "행안부의 행태는 기부문화를 후퇴시키는 것이자 기부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아쉽다"고 꼬집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부가 시민단체들의 눈치를 보는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이번 정부 들어 시민단체들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시민단체들의 눈치가 보이긴 할 텐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부분이라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또 다시 정부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여론의 지탄은 물론 당장 국회에서도 논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