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그림대작' 사기 사건, 대법원 공개변론 화제2시간 동안 찬반 팽팽… "대작그림 판매는 사기" VS "'조수' 고지 의무 없어"
  • ▲ '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 조영남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 조영남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그림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려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겸 화가 조영남(76)의 상고심 공개변론이 28일 오후 2시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이날 법원은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변론 전 과정을 대법원 홈페이지, 네이버TV, 페이스북 라이브,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가 진행한 이날 재판은 조영남이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 중순까지 송기창 등 '대작화가' 2명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지시하고 자신이 가벼운 덧칠 작업을 가미해 총 17명에게 21점을 판매한 혐의(사기)로 기소된 사건의 마지막 변론기일이었다.

    앞서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는 2017년 10월 "대작화가의 관여 사실을 알리지 않은 조영남에게 미술품 구매자들을 속일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며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2018년 8월 원심을 깨고 조영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송기창 등은 조영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한 기술적 보조자일 뿐 독립적인 작가로 볼 수 없고 ▲조영남이 작품을 직접 그렸다는 친작(親作)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현대 미술 작품의 제작 관행에 비춰봤을 때 작가가 모든 구매자에게 보조 작가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는 없는 만큼, 이를 구매자들을 속인 범죄(기망) 행위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게 재판부가 밝힌 무죄 선고 이유였다.

    따라서 이날 재판은 ▲미술계에서 제3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허용되는지 여부와 ▲제3자를 사용한 미술작품 제작 방식을 작품 구매자들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 미술계의 통상적인 거래 관행인지 여부 ▲조영남의 친작 여부가 구매자들의 작품 구매의 본질적인 동기로 볼 수 있는지 여부 ▲대작화가와 보조자(조수)의 구별 기준 등이 핵심 쟁점이었다.

    "대작화가가 독자적으로 그림 완성… 조영남은 사인만"

    검찰은 조영남이 대작화가가 그린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은 것은 사기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조영남의 인터뷰 영상과 각종 그림을 증거로 제시하는 한편, 조영남에게 비판적인 한 미술 전문가를 참고인으로 세웠다.

    검찰은 "그동안 조영남은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은 조수가 한 명도 없고 직접 그림을 그린다고 수차례 말했고 직접 작업하는 모습까지 공개했지만, 사실은 송기창 등 '대작화가'에게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주고 거의 완성된 그림을 받아 마치 자기가 그린 작품처럼 팔았다"며 이는 명백한 사기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제가 '꽃과 사이다' 혹은 '꽃과 환타'를 그리면 그것은 (앞서 '꽃과 콜라'를 그린) 조영남의 작품이 아닌 제 작품"이라며 "마찬가지로 '화투'라는 소재와 아이디어는 조영남만의 고유한 것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미술 작품을 평가할 때엔 소재보다 색 배합이나 표현 방식 등 작가의 고유한 기법이 중요하다"며 "누군가 작품의 아이디어를 독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작가가 조수를 쓰는 관행이 미술계에 존재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조영남이 대작화가의 존재를 숨긴 채 대작화가에게 대신 그림을 그리게 해 10만원짜리 그림을 1000만원에 판매했다는 게 문제"라며 "이로 인해 재산상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자적으로 그림을 완성한 송기창은 대작화가라 할 수 있는데, 피해자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거액을 주고 그림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른 나라 팝아트 거장들은 모두 자신의 작업실에서 조수들을 감독하며 작업을 진행했고 이 사실을 모두 고지했는데, 조영남은 대작화가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작화가 쓴 조영남, 작가적 양심 결여됐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은 "작가가 먼곳에 떨어져 조수에게 지시를 내린 뒤 완성된 작품에 사인만 하고 판매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결여된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신 위원장은 "조영남이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 중에 간과해선 안될 것이 있다"며 "액자를 끼웠다는 건 그 그림이 이미 완성됐다는 것인데, 조영남은 이젤 위에 액자를 꽂은 상태로 덧칠 등의 작업을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런 상태에서 손을 봤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완성된 작품에 가필한 것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고 해석한 신 위원장은 "액자를 끼웠다는 것은 이미 끝난 그림이라는 것이다. 조영남은 큰 실수를 했다"고 비난했다.

    신 위원장은 발가락으로 힘들게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를 예로 들며 "진정한 작가는 남에게 아이디어를 주고 대신 그림을 그리게 하지 않는다"면서 "조영남은 혼자 힘으로 모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앞으로는 혼자 작업을 해서 작가의 길로 접어들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아이디어부터 완성까지 한 작가가 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한 신 위원장은 "이번 경우처럼 대작화가가 80~90%를 다 그린다면 예술의 존재는 물론, 미술대학이나 교수, 화가도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세계적으로 몇십년 동안 그림을 그려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의 경우 시간이 부족할 때 100명, 200명씩 조수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이 사실을 모두 공개한다"며 "조영남이 방송 활동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조수에게 그림을 그리게 시키고 갤러리에서 파는 것은 일반 작가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화가로 인정받기 위한 특별한 기준이나 제도가 있느냐'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해선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하고 미술 단체에 소속돼 활동하는 등 최소한의 역량이나 자격이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조영남이 이름 있는 작가에게 사사하거나 미술 단체에 속해 활동하고 있었다면 우리가 판단을 달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보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에 김선수 대법관은 프로작가와 아마추어작가를 구분짓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신 위원장은 "제가 혼자 노래를 부른다고 비용을 주는 게 아니라 가수협회에 가입해야 일종의 라이센스가 나오는 것처럼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라며 "미술을 전공하고 그룹전이나 개인전에 참여하는 등 소정의 자격 요건을 갖췄을 때 미술회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미술계 카르텔을 강조하는 신 위원장의 말에 김 대법관은 "반드시 귄위적인 제도권 안에 들어와야만 프로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림을 독학해서 성공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신 위원장은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미술계에 조수 도움 받는 작가들 많아"


    변호인 측 참고인으로 나온 표미선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미술계에 조수의 도움을 받는 관행이 많이 있다"며 조수들과 협업한 조영남의 사례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표 전 회장은 "조영남은 팝아트 계열 작가로 본인의 철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더 많은 양의 전시를 위해 필요하면 조수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 전 회장은 "조영남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조수를 쓴다는 사실을 숨긴 적이 없고, 실제로 집에서 직접 본 적도 있다"면서 "조영남은 전통적인 회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거나 토를 달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표 전 회장은 "아시다시피 피카소는 작품 수가 20000점이 넘는데 우리 작가들은 많이 그려봐야 3000점을 넘기 어렵다"며 "유명 작가가 되기 위해선 작품 수가 많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우리 작가들도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서 더 많이 작품을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조수를 썼다고 처벌하면 기존 작가들도 문제될 수 있어"


    이날 공개변론에선 참고인과 검찰 등을 상대로 대법관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기택 대법관은 이번 사건이 피해자들의 고소나 고발이 있어 시작된 게 아니라고 전제한 뒤 "화가의 작품이 조수를 사용했는지 여부에 따라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조수를 써야 적법한 것이고 그 이상을 쓰면 위법한 것인지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또 "이번 경우처럼 조수가 개입한 문제로 화가들을 처벌한다면 그런 식으로 작업해온 화가들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다"면서 이번 재판이 미술계에 미칠 파장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대법관도 "만일 구매자가 조영남이 '친작'한 것으로 믿고 구매한 것이라면 구매 계약을 취소하고 민사적으로 해결하면 될 일 아니냐"며 "구매계약 내용 속에 친작이라는 게 포함돼 있는지도 의문이고, 따라서 사기 혐의가 아닌 동기 착오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법관들의 지적에 검찰은 "조수라는 개념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는 정도인데, 이 사건처럼 전업화가에게 맡겨서 액자까지 끼워 약간의 덧칠만 한 채 자기 이름을 새겨 판매한 행위는 사기"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감독 옆에서 작업을 하는지 여부에 따라 조수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다"며 "훌륭한 미술가들은 이런 점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남, 방송에서 조수와 작업하는 장면 공개"

    조영남의 변호를 맡은 김승남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구매자들에게 물어보면 이들은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는 점 때문에 구입한 게 아니라 화투를 소재로 한 독특한 아이디어에 끌리거나 지인의 추천을 받아 구매한 것"이라며 "구매자들이 착오로 작품을 구매한 것이 아님을 알아달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1400점 중에서 직접 그린 건 25점밖에 없고 오히려 그는 빼어난 실력의 조수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며 "앤디 워홀 등 다른 유명 현대미술 작가들의 경우를 봐도 '손기술'은 예술의 일부일 뿐, 회화나 그림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조영남은 조수의 존재를 결코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공개했다"며 "2009년 9월 KBS '여유만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사실을 알렸고 지인이나 기자들, 갤러리 화구상들에게도 조수의 작업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애당초 구매자들을 착오에 빠뜨리려는 인식 자체가 없었음을 강조한 김 변호사는 "더욱이 조영남은 구매자들의 구매 과정과 현장에도 없어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라며 조수의 존재를 고지할 의무만 강조하는 고전적 시각을 버릴 것을 촉구했다.

    김 변호사는 조영남을 사기 혐의로 기소한 검찰이 정작 그림을 함께 그린 조수들은 공범으로 인정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그는 "화투 그림 일부를 그린 조수들은 검찰 논리대로라면 사기죄 공범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한 데 기소는커녕 입건되지도 않았다"며 "피고인에 대한 섣부른 예단으로 수사가 진행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는데…"


    이날 최후 변론을 위해 장문의 편지까지 준비한 조영남은 "지난 5년간 이런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면서 "저는 평생 가수 생활을 했지만 한편으론 용문고 때 미술부장을 지낼 만큼 미술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만큼 50년 넘게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미술을 독학으로 연구해 그렸고 광주 비엔날레, 예술의 전당 초대전 등 40여차례 전시회를 열면서 어느덧 화투를 그리는 화가로 알려지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자신이 화투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 병을 있는 그대로 그려 크게 성공한 것에 착안해 대중적 놀이기구인 화투를 찾아내 팝아트로 옮겨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세밀한 화투를 그리면서 조수도 기용하게 됐고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TV로도 틈틈이 공개했다"며 "이는 저의 작업 방식을 누구에게나 알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부연했다.

    조영남은 "한양음대는 2학년, 서울음대는 3학년까지 다녔는데 현대미술을 공부하면서 음악과 미술이 실현 방법에서 정반대로 구사된다는 것을 알았다"며 "음악은 엄격한 형식과 규칙을 중요시하지만 현대미술은 문법이 몽땅 해체되고 규칙이나 방식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100% 자유가 있고 창의력에 좌우되는 게 현대미술"이라며 "굳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고, 액자를 끼우거나 안 끼우거나 전혀 상관이 없으며 그냥 물감을 뿌리기만 해도 훌륭한 작품이 된다"고 말했다.

    "제 화투 그림은 어떤 방식으로 누가 그렸냐를 보기보다 그림마다 딸린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유한 철학이나 아이디어가 내포돼 있음을 강조한 조영남은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주시길 우러러 청한다"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대법관님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연 눈물을 흘린 조영남은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화투를 갖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화투를 갖고 놀았나보다. 부디 저의 결백을 가려달라. 고맙다"고 최후 변론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