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에 반도체 장비 판매 금지” 美 경고에도… 文 정부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
  • ▲ 스위스 제네바 소재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스위스 제네바 소재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만 해협을 두고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 불똥은 스위스 제네바 시간으로 18일 열리는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먼저 불거질 수도 있다.

    미국 “대만의 WHO 옵저버 참여, 도와 달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6일(현지시간) 중국에 맞서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참여를 지지해 달라고 동맹국에게 호소했다. 이후 미국 의회도 동맹국에 “대만의 WHO 옵저버 자격 획득을 도와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미국 상·하원 외교위원회는 “세계 60개국에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지난 14일 홈페이지에 밝혔다. 미국 의회는 서한에서 “대만이 중국 때문에 WHO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18~19일 화상으로 열리는 WHO의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대만이 옵저버 자격을 얻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대만 외교부에 따르면, 일찌감치 대만의 WHO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힌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외에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인도 등이 미국의 뜻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나라가 대만의 WHO 옵저버 참여를 지지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한국도 이탈리아, 싱가포르, 벨기에, 체코, 스위스, 태국과 함께 서한을 받았지만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대만이 옵저버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194개 회원국 가운데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독립적 기관서 우한코로나 기원과 WHO 대응 조사” 요구에 중국 ‘발끈’

    대만의 WHO 옵저버 참여보다 회원국들이 더 큰 관심을 갖는 주제도 있다. “독립적인 기관을 통해 우한코로나의 기원과 확산, WHO의 대응 과정을 조사하자”는 것이다.

    호주 ABC는 “호주와 EU가 공동 요청한, 독립기관의 WHO 조사에 대해 세계 62개국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면서 “한국을 비롯해 인도, 터키, 일본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다만 WHO에서 이 제안이 통과되려면 전체 회원국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서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호주와 EU의 (WHO 조사) 제안은 아마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 ▲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 대만 기업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 대만 기업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은 이 같은 움직임에 발끈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18일 “미국이 주도하는 조사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므로 반대한다”며 “WHO가 주도해 우한코로나의 기원을 조사해야 하며, 미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또한 “대만의 WHO 옵저버 참여는 미국의 정치적 술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시진핑 전화 받고 “올해 방한 이야기 했다”는 청와대

    이처럼 대만 해협뿐만 아니라 WHO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 안팎에서 이에 관한 긴장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청와대는 지난 1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 간 통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금년 중 방한하는데 대한 굳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한중 정상은 우한코로나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적절한 시기에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도록 협의하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시진핑 주석이 방한 시기를 가늠하려고 먼저 전화한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다르게 보고 있다.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세계보건총회에서 대만이 옵저버 자격을 얻는 것에 반대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호주,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우한코로나 문제로 미국 편에 서고, 대만 편까지 들자 한국은 ‘친중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먼저 전화한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미국 “화웨이에 반도체 설비 금지” 했음에도 한국 “하나의 중국 원칙 존중하며…”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외교관계에서만 그친다면 ‘줄타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다른 나라들에게 반도체 및 ICT 산업에서도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 “미국산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기업이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하려면 미국 정부의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산 기술이 사실상 반도체 핵심기술 전반임을 생각해 보면 전 세계 모든 반도체 기업들에게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라는 경고다.

    여기에 대만 TSMC가 가장 발 빠르게 나섰다. 닛케이 아시안 리뷰는 18일 “TSMC는 앞으로 화웨이의 수주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TSMC는 지난 15일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14조8000억원)을 들여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에도 한국 정부는 대만의 WHO 옵저버 자격 문제부터 미국 상무부의 화웨이 관련 조치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중국과 대만이 평화적인 교류협력을 증진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으로, 이 포지션을 유지하는 틀 안에서 (대만의 WHO 옵저버 자격) 논의에 참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국 의회와 정부 요청을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