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N번방 사건 커지자 '보여주기 법안' 급조… 법조계 "형량 높이기에만 급급"
  •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논란이 되자 국회가 이와 관련해 8일간 7개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된 법안은 대부분 형량을 올리는 데에 집중됐다. ⓒ박성원 기자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논란이 되자 국회가 이와 관련해 8일간 7개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된 법안은 대부분 형량을 올리는 데에 집중됐다. ⓒ박성원 기자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여야 국회의원들이 우후죽순으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8일 새 7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들 개정안은 단순히 형량 올리기에 집중한 모습이다. 법조계에서는 "여론에 휩쓸린 보여주기식 발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지난달 23일부터 31일까지 8일 동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법안 발의만 7건이 올라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3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23일은 N번방 사건 피의자 조주빈의 신상이 언론에 처음 공개된 날이다.

    백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로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커졌다"고 밝혔다. 백 의원이 발의한 법안들은 대부분 형량을 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촬영물 유포자 등의 기존 형량(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7년 이하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조정하는 것이 골자다. 

    또 백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불법음란 촬영물을 발견 즉시 삭제하지 않거나 전송방지·중단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과방위 회의 일정도 없어… 총선 앞둔 상황서 국회 통과 '난망'

    이틀이 지난 지난달 25일에는 미래통합당도 나섰다. 송희경 통합당 의원이 성폭력특례법 개정안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송 의원이 제안한 성폭력특례법 개정안에는 "촬영물이나 복제물을 소지하거나 구입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촬영물과 복제물을 소지한 사람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에는 민주당이 다시 나섰다.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성폭력특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의 제안이유에서도 N번방 사건을 거론하며 "불법 촬영물 촬영자·유포자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백 의원이나 송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보다 형량을 더 높였다. 음란 촬영물을 촬영·편집·유포한 사람에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을, 촬영물 소지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제안이유와 주요 내용만 올려놨을 뿐 의안 원문조차 올라 있지 않다. 

    법조계 "보여주기식 발의, 위헌 논란도" 우려 

    문제는 이 같은 법률 개정안들이 국회 본회의 일정은 물론이고 상임위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 법안을 심사해야 할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의 향후 회의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총선이 보름 앞으로 다가와 임시국회 일정을 잡기도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과방위 소속 한 의원은 "상임위에서 논의하고 임시회를 소집하는 것 자체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관련 법안들은 아마 총선 이후 21대 국회에서 논의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심도 깊은 논의보다 여론만 의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국회 국민청원에서 N번방 사건이 거론될 때는 가만히 있더니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급조된 법안을 발의하는 것을 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들은 '오십보 백보'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며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형량에만 집착해 지나치게 올려놨는데, 순간적으로 국민이 속시원해보일 수 있어도 촘촘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반드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여론에 치우친 졸속입법으로 잘못된 법이 탄생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진다"며 "저지른 죄가 악질적인 것은 알지만, 그것이 무기징역형으로 형량을 끌어올려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잘못하면 위헌 시비까지 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