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자니윤 쇼' 보조 MC로 맹활약… "자니윤 덕분에 토크쇼 진행자로 발돋움"
  • ▲ 가수 조영남(좌)과 고(故) 자니윤. ⓒ뉴데일리 / 연합뉴스
    ▲ 가수 조영남(좌)과 고(故) 자니윤. ⓒ뉴데일리 / 연합뉴스
    "그때만해도 낯설었던 미국의 선진 문화를 제일 먼저 도입한 분이에요. 미국에선 사회 모든 방면에 유머가 섞여 있거든요. 저도 그분에게 배워 토크쇼도 몇년간 진행하고 그랬어요. 은인 같은 분이죠."

    고(故) 자니윤(84·한국명 윤종승)과 함께 90년대 인기 토크쇼 '자니윤 쇼'를 진행했던 가수 겸 화가 조영남(76)은 11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자니윤을 가리켜 "'미국식 토크쇼'를 국내에 정착시킨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조영남은 "우리는 여전히 정치와 유머가 따로 분리돼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은 그렇지 않고 한데 섞여 있다"며 "어느 자리를 가도 삶 속에 유머가 녹아 있어 부드러운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자니윤 씨는 그런 면에서 미국식 유머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탁월한 코미디언이었다"고 말했다.

    조영남은 1989년 3월 8일부터 1990년 4월 5일까지 KBS 2TV에서 방영한 '자니윤 쇼'에서 보조진행자로 활약했다. 메인 MC인 자니윤을 보조하는 역할이었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자니윤과 국내 시청자와의 거리감을 좁혀준다는 측면에선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다.

    조영남이 보조진행자를 맡게 된 건 순전히 자니윤의 요청 때문이었다. 이전부터 조영남과 안면이 있었던 자니윤은 귀국 후 이남기(현 JIBS 대표이사) KBS PD로부터 신설 토크쇼 MC 제안을 받자 자신이 '자니 카슨 쇼(Johnny Carson Show)'에서 했던 것처럼 보조 MC를 붙여달라고 요구했는데, '0순위'가 바로 조영남이었다.

    조영남은 "당시 자니윤 씨에게서 많은 걸 배웠고, '조영남 쇼' 등을 통해 토크쇼 진행자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며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오랫동안 DJ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자니윤 씨에게 배운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조영남은 당시 시청률이 높았던 '자니윤 쇼'가 1년여 만에 폐지된 것을 두고 '외압설'이 나돌았다는 말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시작부터 끝까지 어떠한 외압이나 제재도 없었고, 마지막 방송도 아주 스무스하고 멋있게 끝났다"고 말했다.

    "1년밖에 안 해 아쉬웠다고요? 우리는 충분히 했어요. 제재나 외압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자니윤 씨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인데…, 그때는 그런 게 있었어요. 하여튼 정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끝날 때도 근사하게 끝났어요."

    또 조영남은 '항간에는 배우 최지희가 자니윤을 키웠고 자니윤 쇼까지 만들어줬다는 얘기도 나돈다'는 말에 "최지희 씨는 자니윤 씨의 옛날 친구인데, 그런 얘기는 그냥 그쪽에서 하는 얘기"라며 "'자니윤 쇼'는 당시 KBS 책임피디였던 이남기 사장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원로배우 최지희는 2012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인걸 홍길동'을 찍을 때 연출부 조감독이었던 자니윤을 알게 됐다"면서 "나중에 자신의 딸이 미국 비벌리힐스로 유학간 것을 계기로 미국에 있던 자니윤과 친해졌고, 한국에 자니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1988년 '프레올림픽쇼'와 '자니윤 쇼'를 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자니윤은 당시 월간조선에 보낸 입장문에서 "1988년 5월에 열린 '서울 프레올림픽쇼'는 미국에서 100만 달러, 한국의 KBS가 100만 달러를 대기로 하고 제작된 것"이라며 "당시 100만 달러는 거액이어서 최지희 씨가 KBS 측에 일부를 보조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또 "'자니윤 쇼'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온 김현욱 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당시 민정당 의원)이 황인성 전 국무총리(당시 아시아나항공 사장)를 소개해 줘 그분의 후원으로 제작·방송하게 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60년대 초반,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자니윤은 한동안 파트 타임 가수로 활동하다 동양인 최초로 '자니 카슨 쇼'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NBC 방송국에서 '자니윤 스페셜 쇼'를 진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자니윤은 1989년 국내로 돌아와 방송 사상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니윤 쇼'를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한국관광공사 감사를 맡기도 했던 자니윤은 2016년 뇌출혈 증세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치료 및 요양 생활을 했다.

    말년에 치매 증세가 심해져 LA 헌팅턴 양로센터에서 지내던 자니윤은 지난 4일 저혈압으로 LA 알함브라 메디컬센터에 입원했으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나흘 만에 숨을 거뒀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메디컬센터에 기증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장례식은 추후 치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