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출범 후 '직권남용' 고소·고발 2008년 대비 500% '급증'… "대법원 파기환송 시기에 의구심"
  • ▲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긴 전 정부 인사들만 20여명에 달한다. ⓒ정상윤 기자
    ▲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긴 전 정부 인사들만 20여명에 달한다. ⓒ정상윤 기자

    법조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이하 직권남용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건 문재인 정부다. 현 정권이 '적폐청산'이라며 직권남용죄로 '법적 책임'을 물은 박근혜 정부 인사만 2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법조계는 문재인 정부가 '직권남용'으로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옭아매는 것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직권남용의 남용이라며 결국 문재인 정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직권남용죄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文정권 '적폐청산 수단' 직권남용죄… 朴정부 20여 명 기소

    직권남용죄 조항에서 규정한 '직권'과 '의무'의 개념이 불분명해, 법이 말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법조계의 지적이 잇따랐다. 게다가 법조계 다수설은 '직권남용죄의 직권은 상대방 의사를 제압하는 요소를 포함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범죄이고, 이에 의해 직권은 강제적 권한을 의미한다'고 봤다. 직권남용 부작용을 우려해, 그 의미를 협소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판례도 뚜렷하지 않다. 대법원 소부가 그동안 내놓은 직권남용죄 판단은 이렇다. "남용 해당 여부는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그 목적 및 그것이 행해진 상황에서 볼 때의 필요성·상당성 여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2011도1739)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직권을 행사해, 이로 인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죄가 성립한다. (중략) 일반적 직무권한은 반드시 법률상 강제력을 수반하는 것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직무가 남용될 경우 상대방에게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면 된다."(2013도2444)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의 판결도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직권을 남용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불분명한 기준, 극소수 판례 등 때문에 직권남용죄 부작용은 일찍부터 예견됐다. 모호한 이 조항이 정치적 보복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2006년 직권남용죄 관련 위헌소송에서 "정권교체 시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추거나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 정부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처럼 논란이 있는 직권남용죄가 문재인 정부 들어 최근 3년간 남발됐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이 죄명으로 기소된 박근혜 정부 인사는 20여 명이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안종범 전 경제수석, '사법농단' 사건의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이다. 일각에서는 협소하게 적용돼야 할 직권남용죄가 남발되면 결국 현 정부 인사들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文정권 출범 2017년, 전년 대비 직권남용 고소·고발 2배 이상 늘어

    예견은 현실화했다. 문재인 정권 '실세'들도 직권남용죄 혐의로 재판받게 된 것이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을 받는 조국(55) 전 법무부장관, 백원우(53)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53) 전 반부패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검찰 인사권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추미애(61·14기) 법무부장관과 문재인(67) 대통령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직권남용죄 관련 고소·고발 건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시기와 맞물린 2017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검찰청 검찰연감에 따르면, 2019년 11월 기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관련 고소·고발 건수는 2008년보다 다섯 배가량 증가했다.

    연도별 건수를 살펴보면 2008년 2897건, 2009년 3860건, 2010년 4426건, 2011년 4238건, 2012년 5264건, 2013년 4991건, 2014년 4447건, 2015년 5561건, 2016년 4553건, 2017년 9116건, 2018년 1만3738건이다. 2019년 11월 기준으로 한 고소·고발 건수는 1만4599건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 전년 대비 2배 이상 폭증한 점과 2018년 고소·고발 건수가 4622건으로 가장 크게 증가한 점이 눈에 띈다. 박근혜 정부 말부터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직권남용죄로 처벌해달라'는 요청이 늘었다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처벌하던 '단골 메뉴'였던 직권남용죄에 대한 분위기가 올 들어 180도 뒤집혔다. 대법원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직권남용 혐의 일부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김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안 전 국장은 '서지현 검사에 대한 인사보복' 의혹을 각각 받는다.

    직권남용죄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법조계의 시선은 다양하지만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면죄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 조 전 장관, 백 전 민정비서관, 박 전 반부패비서관 등이 대표적 현 정권 '실세'들이 바로 이 죄명으로 기소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국·백원우 기소 후 직권남용죄 파기환송… "현 정부 '면죄부' 주자는 것"

    박주현 변호사(한변 청년위원장)는 "직권남용죄로 조국·백원우 등은 기소됐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도 시작된 상황"이라며 "이런 시기에 사법부가 연이어 이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직권남용죄를 파기환송한 것은 '현 정권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판단을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이는 현 정부와 사법부가 밀접한 관계 아닌가 하는 우려를 주는 상황"이라며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같은 명백한 직권남용과 달리, 직권남용의 순수한 법리적 측면에서 엄격하게 해석하는 게 맞다는 의도라고 믿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동의 한 법조인도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 인사들을 대거 직권남용죄로 기소했다"며 "그러다 최근 조 전 장관 등 현 정부 인사들이 같은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게 된 와중에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오니 '현 정부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 것 아닌가' 등 의도가 순수해보이지 않거나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전 정부 인사들과 관련해 직권남용죄를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직권남용죄를 협소하게 적용한 전례에 맞는다'는 취지의 의견도 있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이전 정부 인사들에 대해 무리하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직권남용죄를 남용'했는데, 올해 연이어 나온 대법원 판단으로 인해 갑자기 넓게 적용한 직권남용죄 해석이 이제야 바로잡힌 것 같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경우에도 인사권 남용 등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받는데, 이는 인사권 등 재량의 영역으로 봐야지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무리한 직권남용죄 적용, 사회적 갈등비용 초래"

    한편 학계에서는 직권남용죄 남발이 곧 '사회적 갈등비용'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 '직권남용 기소'가 법치주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직권남용죄는 전통적으로 보면 모호한 측면이 있어, 죄 여부를 판단할 때는 항상 명확하게 법을 위반했는가 아닌가와 같은 '위법성' 판단이 이뤄진 다음 직권남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며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위법성 여부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소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전 교수는 "모호한 부분을 다 기소하다보니 실제로 직권남용죄 관련 고소·고발 건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결국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문제점을 낳는다"고 부연했다. 특히 "사법부가 '명확성의 원칙'을 지키지 않다보니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법치주의가 보존되지 않으면 마녀사냥이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직권남용죄의 근거 법조항은 형법 123조다. 이 조항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이 죄가 성립하려면 공직자가 직무권한을 남용했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 여기에 ①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시키거나 ②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일,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있다면 직권남용죄가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