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모·노모 씨, 33개월 임금 등 2200만원 손해배상소송… "명예회복과 국군포로 실상 알려지길 원해"
  •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을 상대로 한 국내 첫 재판이 21일 진행됐다. ⓒ정상윤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을 상대로 한 국내 첫 재판이 21일 진행됐다. ⓒ정상윤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을 상대로 한 국내 첫 손해배상 재판이 21일 진행됐다. 1950년대 6·25전쟁 당시 포로로 잡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탈출한 탈북자들이 제기한 임금·손해배상소송이다. 이들은 "돈 몇 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명예회복과 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북한에 아직도 국군포로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현 서울중앙지법 민사39단독 부장판사는 21일 오전 10시30분 한모(86)·노모(91) 씨가 김정은과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지난해 6월21일 시작돼 모두 네 차례 열렸다.

    한씨, 정전 후 3년간 강제노역 2000년 탈북

    한씨와 노씨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다. 한씨는 자강도 칠평 인민군수용소에서 지내다 1953년 정전과 동시에 평안남도 강동군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1953년 9월11일부터 1956년 6월13일까지 내무성 건설대 1709부대 탄광에서 일했다. 노씨 역시 포로로 잡혀 3년간 강제노동했다. 이들은 각각 2000년과 2001년 탈북해 국내로 들어왔다.

    이들은 2016년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한씨와 노씨는 북한에서 받지 못한 33개월간의 임금과 정신적 손해배상 등 22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이 재판은 김정은에게 서류가 송달되지 않는 문제 등으로 인해 3년이나 지난 지난해 처음 시작됐다.

    변호인 측은 "김정은에 대한 공시송달은 지난해 5월쯤 된 것으로 기억한다"며 "유엔 인권조사보고서 등을 보면 귀화한 국군포로를 인정해서 전역시켜주고 했기 때문에, 북한 전쟁포로였던 원고들이 불법적으로 억류됐다는 입증이 된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포로를 송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네바협약 등에 따르면, 전쟁이 끝나고 포로를 즉시 귀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포로들을 강제로 억류했다면 이 자체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또 "이들이 국군포로로 잡혀 있다 귀화한 사실을 인정한 보훈처의 자료도 있다"며 "물론 김정은이 정권을 잡기 전에 이들은 귀화했으나, (강제노동 등이) 김일성 때를 비롯해서 김정일·김정은 등 이렇게 계속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북한의 불법행위로 인한 취득도 상속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유엔, 국군포로 불법억류 입증… 김일성 때 일도 법적 책임추궁 가능"

    재판부는 "김정은에 대한 청구원인과 상속권 문제, 원고들이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는 송환 문제와 이 같은 불법행위가 되는 국제적 기준, 손해배상 범위와 관련된 부분 등 세 가지에 대한 석명을 구한다"고 정리했다. 석명(釋明)은 '사실을 설명해 내용을 밝힌다'는 의미다. 재판부가 사실관계, 불명확한 내용 등을 더 파악하기 위한 제도다.

    이 소송은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동국대 교수)의 국군포로송환위원회(이하 송환위)가 맡아 진행한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도 이 단체에서 활동하며 2016년부터 재판을 주도한다.

    김 변호사는 재판 직후 "그동안 네 차례 준비절차기일을 거치면서 재판부가 상당히 성의를 가지고 꼼꼼하게 이것저것 물어봐서 우리도 자료를 충분히 보냈다"며 "재판부는 직접증거를 원하는데, 50년 된 일이라서 입증하기가 쉽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변호인 측은 "국정원이 자료 요청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승소할 경우 북한 재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김정은에게도 처벌을 물을 수 있는가' 등의 질문도 나왔다. 변호인 측은 "국내에 있는 북한 자산을 강제집행할 것"이라며 "조선중앙티비 등 북한 매체가 받을 저작권료를 모아 20억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법원에 공탁돼 있어서 이를 강제집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에 대한 상속권 비율도 변호인 측에서 입증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국정원 비협조적" 불만 토로… "국내 북한자산 강제집행할 것"

    이날 재판에 출석한 한씨는 "돈 몇 푼 더 받자고 소송한 것이 아니라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며 "전쟁 발발한 지 70년인데, 아직도 북한에는 국군포로 수만 명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한다고 하는데 실제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남한에 있는 생존 국군 포로는 23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재판은 오는 3월24일 오전 11시40분 열린다.

    한편 미국 법원은 2018년 12월,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고문 후유증 등으로 숨진 오토 웜비어의 유가족에게 북한이 5억1114만 달러(약 5800억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오토 웜비어는 2016년 1월 북한여행 중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정치선전문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돼 북한에 억류됐다. 

    웜비어는 이로부터 17개월 후인 2017년 6월 혼수상태로 풀려났으나, 석방 6일 만에 사망했다. 유가족 측은 2018년 4월 '아들 죽음의 책임을 묻겠다'며 북한을 상대로 약 11억 달러(약 1조2432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