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선거 개입' 정황 담긴 업무수첩…법조계 "전문 진술 아니면 증거능력 대부분 인정"
  • ▲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23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23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송병기 업무수첩'이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관련 '스모킹 건'이 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이 높다. 검찰이 확보한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수첩에는 청와대가 지난해 지방선거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김기현(60) 전 울산시장을 겨냥한 '하명수사' 의혹이 '선거 개입'으로 커진 계기도 이 수첩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 수첩은 국정농단사건 때의 '안종범 수첩'과 비교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기록한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이 대법원에서 인정된 전례가 있어서다. '송병기 업무수첩' 역시 '송 부시장이 직접 들은 내용을 기록했다면 유죄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현재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11월27일 '울산경찰이 6·13지방선거를 세 달가량 앞두고 김 전 시장 관련 비위 첩보를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수사를 시작했다.

    靑 선거 관여, 여당 후보 공약 지원 정황 등 담겨

    앞서 청와대는 2017년 12월29일 김 전 시장 측근 비위 관련 문건을 경찰청에 하달했다. 이를 계기로 경찰이 2018년 3월16일 울산시청 등을 압수수색하며 관련 수사를 본격화했다. 울산검찰은 지난 3월 김 전 시장 측근 비위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내렸다.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은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이었다.

    검찰은 이후 12월6일 송병기 부시장의 집무실·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확보한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 등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지방선거 공천에 관여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한다.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는 △청와대가 2018년 6·13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개입한 정황 △당시 현직 신분이던 김 전 시장과 송철호 울산시장(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간 공약에 대한 논의 등이 담겼다.

    내용을 보면, 경선과 관련해서는 'VIP가 실장 통해서 출마 요청' '내부 경선 하면 송철호 불리' '중앙당과 BH→임동호 제거, 송장관 체제로 정리' '최인호 曰 조국이 임동호 움직일 카드 있다고 말했다' 등이다. 또 '단체장후보 출마 시, 공공병원(공약)·산재모(母)병원→좌초되면 좋음' '공공병원 대안 수립 시까지는 산재모병원 추진 보류→공공병원 조기 검토' 등 여야 후보들의 공약 부분도 있다고 알려졌다. 산재모병원은 김 전 시장, 공공병원은 송 시장의 공약이었다.

    또 이 수첩에는 2018년 3월31일 송 부시장과 송철호 시장 등이 이진석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과 회동해 공공병원 공약 관련 회의를 한 것으로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 부시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수첩에 오류가 많다며, 이 부분도 부인했다.

    대법원, 안종범 수첩 중 일부 내용 증거능력 인정

    법조계는 그러나 송 부시장의 수첩이 법정에서 유죄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업무수첩이라는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다. 국정농단사건 당시, 안 전 수석이 기재한 내용 일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죄 근거로 활용됐다.

    안 전 비서관의 수첩에는 2014~16년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기록됐다.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강요한 사실, 차은택 회사에 기업광고를 주라는 지시, 최서원 씨 단골 성형외과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제3자 뇌물수수, 강요, 업무상 배임 등 혐의와 관련돼 있다.

    대법원은 지난 8월29일 국정농단사건 상고심에서 안 전 수석 수첩의 증거능력을 일부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내용에 한해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독대 뒤 안 전 수석에게 불러준 부분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전문증거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문증거는 진술자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 등의 증거를 의미한다. 재판부는 "(독대에 대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 증명돼야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동의 A 변호사는 "국정농단사건에서처럼 관련자들의 진술도 필요하기는 하나, 송병기 부시장의 업무수첩은 결정적 물증"이라며 "결정적 스모킹 건으로,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송병기 수첩, 결정적 역할"

    다른 법조인들도 비슷한 의견이다. 서울 서초동 B변호사는 "이번에도 (안종범 사례처럼) 송병기 부시장이 (송철호 시장과) 동석해 들은 내용은 똑같이 증거능력이 있을 것"이라며 "수첩만으로는 유죄라고 할 수는 없어 부수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누구에게 들은 전문진술이 아니라면 안종범 전 수석 사례에 비춰 '송병기 업무수첩' 역시 재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법조인 C씨는 "직접 경험한 사실을 적은 내용을 증거로 하면 문제가 없는데, 제3자에게 들은 것을 적은 경우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가 문제될 수 있다"며 "이를 전문증거라고 하는데, 아마 청와대 안종범 수첩에서도 그 부분이 문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 전 수석 수첩에서 전문증거에 해당하는 '박 전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의 대화' 부분은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C씨는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적은 것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을) 들은 내용을 적은 것에는 증거능력 차이가 있고,  이번(송병기 업무수첩) 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현행법은 전문증거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형사소송법은 제311조~316조가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원진술자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해 진술할 수 없고,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된 때' 등에 한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