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대 국정원 특활비 수수 주체는 김백준… 법조계 "사실관계 달라 영향 없을 듯"
  •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DB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DB
    대법원이 박근혜(67)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인정하고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단이 같은 혐의로 재판받는 이명박(78) 전 대통령의 2심 재판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법조계에서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특활비를 직접 수수한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의 경우 돈을 받은 사람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 측도 "김 전 기획관이 한 일이며, 이 대통령은 특활비를 받은 적도,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국고손실 혐의를 입증하려면 특활비가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 등을 먼저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은 28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건넨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라고 본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고손실 혐의를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원 판단대로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본다면 국고손실죄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MB 특활비 수수, 박근혜 사건과 사실관계 달라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또 다른 전직 대통령으로 같은 특활비 수수 혐의를 받는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은 총 네 차례에 거쳐 6억원과 10만 달러의 국정원 특활비를 수수해 청와대 예산으로 사용했다며 이 전 대통령을 뇌물 및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증인신문 없이 치러진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검찰 조서 등을 근거로 이 전 대통령의 특활비 수수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의 사건과 다르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의견이다. 박 전 대통령과 달리 특활비 수수 주체가 이 전 대통령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0년 7~8월께 전달한 특활비 2억원은 김 전 기획관이 받아 보훈단체 지원금으로 사용했다. 전임 김성호 전 국장원장 재직 시절인 2008년 4~5월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이 전달한 2억원도 김 전 기획관이 수령해 청와대 예산으로 사용했다.

    김 전 기획관은 비슷한 시기인 2008년 상반기 특활비로 조성된 자금 2억원을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고도 주장했지만, 1심은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원 전 원장이 2011년 9~10월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통해 전달한 10만 달러도 자금 용도에 부합하게 사용됐다는 게 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법조계에서는 국정원이 전달한 특활비가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너간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 만큼 국고손실죄의 유무죄 판단 이전에 제3자가 받은 돈이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너가거나 이를 지시·보고받은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본 대법원의 판단이 일면 이 전 대통령 측에게 불리하게 보일 수 있으나, 박 전 대통령의 사건과는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단편적 판단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원세훈 "대통령에게 보고한 적 없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특활비 수수 혐의와 관련해 돈을 건네받은 사실도, 지시·보고받은 사실도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8일 원 전 원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기획관은 내가 원 전 원장에게 부탁했다고 하는데, 나는 국정원에 대한 자금 요청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며 "김 전 기획관이 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직 중은 물론 퇴임 후에도 얘기를 듣지 못했으며 검찰 조사 이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검찰 역시 이 전 대통령이 특활비를 직접 수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결국 쟁점은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기획관과 국정원장들에게 특활비 상납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있는지 여부다. 증인신문이 이뤄진 항소심 재판에서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3월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 측의 요청을 받고 자금을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그 정도 사소한 일로 (대통령이) 직접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김주성 전 실장 역시 특활비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김 전 실장은 "내가 이 전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검찰 조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김백준 비서관에게 2억원을 건넨 사실을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