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시행령 개정안 시행… 이재용·조현준·이중근, 유죄 확정 시 총수직에서 물러나야
  • ▲ 이재용(51) 삼성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본인의 파기환송심에 출석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이재용(51) 삼성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본인의 파기환송심에 출석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8일부터 시행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위헌’ 논란이 지속됐다. 특경법 시행령 개정안이 경제사범의 관련 기업 취업제한 규정을 강화했는데, 이는 국가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한 헌법 제126조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회의 입법절차를 무시한 채 '시행령 정치'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부터 시행된 ‘특경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5억원 이상 규모의 사기·공갈·횡령·배임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경제사범의 취업제한 기업에 '범죄로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이 포함됐다. 횡령 등의 범죄로 손해를 끼친 회사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한 셈이다.

    취업제한 기업에 ‘범죄로 재산상 손해 입은 기업’ 포함

    개정 전에는 '공범 관련 기업'이나 '범죄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본 제3자 관련 기업'에만 취업이 제한됐다. 취업제한 기간은 실형의 경우 집행 종료 후 5년간, 집행유예는 기간 종료 후 2년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존 시행령은 횡령죄를 저지른 후 공범 회사로 넘어가 다시 취업하는 걸 막자는 취지인 반면, 개정안은 기업 총수 등의 횡령 범죄를 더 엄하게 처벌하자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조현준(51) 효성그룹 회장, 이중근(78) 부영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들의 거취가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63) 씨의 딸 정유라(23) 씨에게 승마 용역대금과 말 3필을 후원하고, 최씨가 설립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특경법상 횡령)로 파기환송심을 받는 중이다. 향후 유죄판결이 확정될 경우 개정안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이 부회장의 취업도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조 회장은 200억원대 횡령 혐의로 기소됐고, 임대아파트 분양가 조정으로 4300억원대 횡령 혐의를 받는 이 회장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선 임원의 취업을 제한하는 이번 개정안이 ‘국가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헌법 제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국가가 민간기업 경영에 간섭… 헌법 제126조 위반 소지

    횡령과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취업을 제한하고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횡령 등 범죄가 기업경영 측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벌 이외에 취업제한까지 두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은 7일 성명을 내고 "특경법 시행령 개정안은 민간기업의 경영에 국가기관이 관여할 수 없게 한 헌법 제126조에 위반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게 돼 실질적인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헌 한변 공동대표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기업가 입장에서 기업경영에서 비용을 쓰는 경우 그것이 횡령이나 배임이 될 수 있느냐는 항상 논란이 돼 왔다"면서 "이런 부분을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이 맞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행령 개정안 적용 시점에 대한 논란도 있다. '범죄행위 시점'과 '확정판결 시점' 중 어느 쪽을 기준으로 보느냐는 문제다. 개정안 부칙은 시행령의 적용에 대해 "이 시행령 시행 이후에 범한 범죄로 형이 확정된 사람부터"라고 규정했다.

    이헌 대표는 "부칙에서 '범한 범죄'와 '형이 확정된 사람' 중 어디에 방점을 찍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적용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는 내용을 입법절차도 없이 시행령으로 정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입법절차 생략한 文정부의 ‘시행령 정치’

    정부가 국회 입법절차를 생략한 채 시행령 정치를 지속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회적 공론화 과정과 국회 입법절차를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시행령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2025년까지 전국 79개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헌법에서 교육법정주의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시행령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달 30일 법무부가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도 법무부 훈령으로 제정됐고, 올 초 논란이 됐던 사립 유치원에 대한 국가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 강제를 위한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도 교육부령으로 발표됐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자유에 관한 부분을 시행령으로 옥죄고, 자사고 폐지 등 교육과 관련된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부분임에도 이를 시행령으로 바꾼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방향"이라며 "입헌정신이 근본적으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