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영화'로 '기생충' 선정... "공포·풍자·비극 뒤섞은 우화" "계급투쟁에 관한 날카로운 교훈 담아"
  •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 뉴욕타임즈(NYT)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Parasite)'을 '올해의 영화'로 꼽으며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 지속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즈는 10월 30일(현지시각) 'It’s Bong Joon Ho’s Dystopia. We Just Live in It(우린 봉준호의 디스토피아에 산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생충'이 '올해의 영화'가 되고 봉준호 감독이 세기의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인생을 판타지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매우 은유적이면서도 파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뉴욕타임즈는 "가난한 기우의 반지하 집과 부자인 다혜의 대저택은 현대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소이고, 기우가 친구로부터 받은 '수석'은 그의 가정에 행운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에게 저주를 안겨주기도 한다"며 "이렇듯 '기생충'은 교묘한 사기극에 공포·풍자·비극을 뒤섞은 현대판 우화로, 계급투쟁에 관한 날카로운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국처럼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을 둘러싼 논쟁이 시끄러운 미국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이미 매니아들이 추종하던 감독에서 '일급 영화 제작자'로 인정받고 있다고 추어올린 뉴욕타임즈는 "'기생충'이 왜 '올해의 영화'인지를 더 알고 싶다면 '타락한 인간'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깊게 파헤치는 그의 전작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즈는 "봉준호 감독은 추격·격투신을 찍는 건 좋아하지만 물리적인 장소에 속임수를 쓰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반응이 때론 놀랍지만 그들의 심리를 갖고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특히 "등장 인물들이 나름의 중력과 밀도, 우아함을 갖는 동시에 어리석은 면모도 있어 상당한 현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석했다.
  • 그렇다고 해서 "봉 감독을 '현실주의자'라고 부를 순 없다"며 서울 한강에 사는 거대한 육식성 돌연변이 괴물이 공포를 퍼뜨리는 이야기를 그린 '괴물'과, 프랑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설국열차' 같은 봉 감독의 전작들을 예로 들었다.

    이 중 "봉 감독의 페르소나(송강호)와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설국열차'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투쟁을 놀랍고도 암울할 정도로 그려낸 종말론적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어 "'옥자'는 유전공학, 대중매체, 다국적 자본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시대를 맞아 '샬롯의 거미줄(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라는 교훈을 담은 동화)'의 또다른 업데이트판처럼 그려졌다"고 해석했다.

    뉴욕타임즈는 "이러한 작품들과 비교하면 '기생충'은 훨씬 더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며 "'기생충'은 봉 감독의 초기작들인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과 더 가깝다"고 평가했다.
  • 하지만 "봉 감독의 작품을 '장르'로만 구분짓는다면 그의 독창성과 일관성을 놓치게 된다"며 "'설국열차'와 '옥자'에 투영된 끔찍한 (기술과 탐욕으로 점철된)미래와, '기생충' '마더' '살인의 추억'에서 계층별로 나뉘어 갇혀 사는 인간들의 모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봉 감독의 영화는 밝고 화려한 색상과 함께 긴장감이 넘치는 부분이 있어 최소한 5~6번은 숨이 멎을 정도의 스릴감을 맛볼 수 있다"며 "'기생충'에선 주인집 부부와 아들 모르게, 기우네 가족이 거실 테이블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장면이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끝으로 뉴욕타임즈는 "봉 감독의 영화에 등장한 각종 재난들은 어떤 징조라기보다는 이미 닥친 현실"이라며 "괴물이 우리 사이를 돌아다니고, 부패는 정상취급 받고 있으며 친구나 친척 등을 제외하고 누구를 믿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봉 감독의 세계다"라고 밝혔다.

    [사진 제공 = 앤드크레딧 / ㈜바른손이앤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