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공범 특정 않을 시 무죄·공소기각 검토"… 김은경·신미숙, 前 정권 블랙리스트 작성 사표 요구
  • ▲ 법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허술하다고 29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지적했다. ⓒ정상윤 기자
    ▲ 법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허술하다고 29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지적했다. ⓒ정상윤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가 또 다시 검찰의 공소장 문제를 지적했다. 김 전 장관의 지시를 이행한 직원들이 ‘어떤’ 공범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밝혀달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1차 공판준비기일에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검찰은 간접정범으로 보고 기소했다며 특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검찰 주장을 무시하고 다음 기일까지 '공범'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29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의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이날도 두 피고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할 의무가 없다.

    1차 이어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도 '공소장' 문제 삼은 재판부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첫 공판준비기일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검찰의 공소장을 문제 삼았다. 공소장에 적시된 '공범'이 간접정범인지 공동정범인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인권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범죄를) 직접 실행하지 않은 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실행 행위자들과) 피고인들 간 광의의 공범관계를 공소장에 특정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박천규 당시 환경부 기획조정실장(현 환경부 차관) 등 김 전 장관 등의 지시를 이행한 '실행 행위자'인 환경부 직원들이 공동정범인지 간접정범인지 확실하게 하라는 지적이다.

    공동정범은 공동으로 죄를 범한 경우, 간접정범은 타인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범죄를 실행한 경우다. 간접정범과 공동정범은 범행 가담 정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적용 법도 다르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검찰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무죄 선고나 공소기각 취지의 의사도 내비쳤다.

    재판부는 "검찰이 3000개의 증거를 냈는데 3000개의 증거를 내도 (공소장에 공범 여부를 특정하는 게) 자신이 없으면 주위적·예비적 공소사실로 해도 되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무죄 판결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 하는지를 변호인 측에서 의견을 밝혀주시면 참고해 선고하겠다"고도 밝혔다.

    검찰의 공소 유지를 위한 증거를 직접 비판하면서,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을 경우 주요 공소사실을 기각하거나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읽혔다.

    피고인 측도 재판부 견해에 동의하며 공소장 문제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 측은 "피고인의 방어권이 어렵게 된다"고 주장했고, 신 전 비서관 측은 "직권남용 혐의는 일정한 권한이 있는 사람만으로 특정하고 그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들은 권한이 전혀 없다고 한다"며 "이런 식이면 전부 공동정범이 돼야 하는데, 공소사실을 특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간접정범으로 기소" 검찰 주장에… 재판부 "11월 12일까지 공소장 변경하라"

    검찰은 재판부의 공소장 관련 지적이 이어지자 "(우리가) 의견을 밝힌 건 간접정범으로 보고 기소했고 특정하지 않은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난 기일에 오늘까지 정리해 달라고 했고, (지난 기일로부터 오늘까지) 4주면 충분했을 것"이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이어 "11월12일까지 공소장 변경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첫 공판기일을 11월27일 오후 2시로 지정했다. 이날 김 전 장관 등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김 전 장관은 2017년 7월~2018년 11월 장관 재직 당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명단을 만들고 동향파악을 지시하는 등 전 정권 인사를 축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2017년12월~2018년 1월 환경부 공무원을 시켜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혐의 등도 받는다.

    신 전 비서관은 환경부 산하 기관 인사를 선발할 때 청와대 내정 후보자가 탈락하자 관계자 등을 불러 추궁하며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