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외교부, 러시아에 항의… 합참은 “방공식별구역이지 영공 침범은 아니다” 궤변
  • ▲ 지난 22일 러시아 군용기 6대가 3시간에 걸쳐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KADIZ)을 들락거렸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2일 러시아 군용기 6대가 3시간에 걸쳐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KADIZ)을 들락거렸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러시아 군용기 6대가 지난 22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 동해와 남해, 서해를 휘젓고 다녔다. 올 들어 20번째다. 군 당국은 전투기를 출격시켜 요격 조치를 했고, 국방부와 외교부는 강력 항의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별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다.

    러시아 군용기 6대, 3시간 동안 KADIZ 누벼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침범을 확인하고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응했다고 밝혔다. 합참에 따르면,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침범은 22일 오전 9시 23분부터 시작됐다.

    러시아 A-50 조기경보기 1대가 울릉도 북방에서 KADIZ에 진입해 7분 뒤 이탈했고, 오전 10시 6분 다시 KADIZ에 진입해 7분 가량 머물다 이탈했다. 오전 10시 41분에는 Su-27 플랭커 전투기 1대와 Tu-95 베어 전략폭격기 2대가 KADIZ를 침범해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비행했다. Su-27 전투기는 울릉도 동쪽에서 북상하면서 KADIZ를 이탈했고, Tu-95 폭격기 2대는 북쪽에서 남하하면서 오전 11시 10분이 돼서야 포항 동쪽으로 이탈했다.

    Su-27 전투기와 Tu-95 폭격기는 곧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를 침범해 비행하다 오전 11시 58분 제주도 남쪽에서 KADIZ를 다시 침범, 제주도와 이어도 사이를 비행해 서해로 북상, 오후 12기 58분 태안반도 서쪽에서 KADIZ를 벗어났다. 이들은 오후 1시 40분 이어도 서쪽에서 다시 KADIZ를 침범해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러시아 군용기 편대가 KADIZ를 완전히 이탈한 것은 오후 3시 13분이었다.

    합참에 따르면, 이들과 별개로 Su-27 전투기 2대가 오후 2시 44분 울릉도 북쪽에서 KADIZ를 침범했다가 오후 3시 1분 울릉도 동북쪽에 있던 Tu-95 폭격기 2대와 합류하며 벗어나기도 했다. 이날 KADIZ를 누볐던 러시아 군용기는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대, TU-95 전략폭격기 2대, SU-27 전투기 3대 등 모두 6대였다.

  • ▲ 공중급유를 받는 Tu-95 폭격기와 호위를 맡은 Su-27 전투기. 전략폭격기는 이처럼 장거리 전투기의 호위를 받는 경우가 많다. ⓒ1995년 출간 Su-27 플랭커 전투기 사진집 중 공개사진.
    ▲ 공중급유를 받는 Tu-95 폭격기와 호위를 맡은 Su-27 전투기. 전략폭격기는 이처럼 장거리 전투기의 호위를 받는 경우가 많다. ⓒ1995년 출간 Su-27 플랭커 전투기 사진집 중 공개사진.
    러시아, 올 들어서만 KADIZ 20번 침범…청와대는 무관심

    합참은 “올 들어 러시아 군용기가 KADIZ 내에서 비행한 사례는 20번”이라며 “우리 군은 울릉도 북방에서 이들의 항적을 포착했을 때부터 공군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켜 추적 및 감시 비행과 경고방송 등 정상적인 전술조치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국방부는 KADIZ 침범과 관련, 러시아 측에 전화를 걸어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외교부도 같은 날 주한 러시아 대사관 관계자를 초치(招致)해 유감을 표시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권영아 외교부 유라시아 과장은 레나드 살리믈린 주한 러시아 대사관 참사관을 초치해 러시아 정부에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유사한 상황의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외교부의 대응은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침범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됐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런데 같은 날 나온 합참의 설명이 이상했다. 합참은 “러시아 군용기의 이번 KADIZ 내 비행 동안 우리나라 영공 침범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합참은 “방공식별구역(ADIZ)은 영공과 다른 개념으로 영공 침범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국가별로 임의로 설정한 구역”이라며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이 영공 침범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영공 침범을 한 게 아니니 문제될 것 없다”는 러시아 측의 변명과 같은 뜻이었다.

    일본이라면 쌍심지를 켜는 청와대도 러시아의 KADIZ 침범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3일 청와대 브리핑 도중 “지난 7월 러시아의 영공 침범 이후 당국 간 협의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번 KADIZ 침범을 보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그 문제에 관해서는 22일 오후 늦게 국방부에서 입장을 냈고, 외교부가 관련자를 초치해 항의를 했다”며 “청와대는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 않겠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7월과 다른 점은 영공 침범과 KADIZ 침입, 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러 합동군사위원회 개최…핫라인으로 KADIZ 문제 해결될까

    한편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러시아 합동군사위원회가 23일 열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합참 작전 3처장을 대표로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러시아 대표단 구성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 ▲ 지난 7월 23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했을 당시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가 막심 볼로프 주한 러시아 대사 대리를 초치해 항의하는 모습. 러시아 정부는 이후에도
    ▲ 지난 7월 23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했을 당시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가 막심 볼로프 주한 러시아 대사 대리를 초치해 항의하는 모습. 러시아 정부는 이후에도 "우리 군용기는 한국 영공을 침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과 러시아는 이번 회의에서 KADIZ 침범 때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충돌방지 방안을 협의하고, KADIZ와 그 주변을 비행하는 항공기에 대한 정보 교환을 위해 핫라인 설치를 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핫라인 설치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시기와 형식도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군은 2018년 8월 러시아 국방부와 양국 공군 간의 핫라인 설치에 합의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핫라인 설치를 위한 MOU 문안 협의도 끝냈다. 따라서 러시아만 합의하면 핫라인 설치는 시간문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양국 공군 사이에 핫라인을 설치한다고 해도 KADIZ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가 이를 제대로 지켜줄지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당시에도 한국 주재 무관은 물론 러시아 정부도 “우리는 영공을 침범한 적이 없다”며 우겨댔던 일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독도를 기점으로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는 일본과 협력해 러시아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면, 한일 양국이 러시아 공군의 활동을 견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