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증인 김백준·이학수 진술이 전문진술… 삼성 뇌물죄 무죄 가능성 높아져
  •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가 무죄로 판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법원이 국정농단사건 판결문에서 "'전문진술(傳聞陳述, 증인이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을 진술한 것)'에는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없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한 핵심 증인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검찰 진술은 대부분 김석한 에이킨검프 변호사로부터 들은 말을 진술한 '전문진술'로 이뤄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29일 국정농단사건 상고심 선고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해 "안종범의 수첩 내용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안종범에게 지시한 사실은 본래증거에 해당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개별 면담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적어둔 것은 전문진술에 해당하며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에 안종범 수첩을 증거로 한 원심 무죄부분에 대한 검찰의 상고는 기각한다"고 밝혔다. 

    김백준, 김석한으로부터 '전해들은 말' 진술

    이날 대법원의 판단은 "전문진술을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정한 형사소송법 제310조 2항에 따른 것이다. 이 항목은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도 논란이 됐다. 삼성 뇌물수수 등 이 전 대통령이 받는 주요 혐의에 대한 핵심 증인인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이 대부분 김석한 에이킨검프 변호사로부터 들은 말을 진술한 전문진술이기 때문이다. 김 전 기획관의 진술에 증거능력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검찰은 공소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한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 취지는 이렇다. 김석한 변호사가 2009년 3~4월께 자신을 찾아와 "다스 미국 소송과 관련해 삼성이 이 전 대통령을 지원하고 싶어한다" "삼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소송비로 쓰고 남은 돈을 돌려받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핵심 증인인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은 지난해 2월 검찰에 제출한 자수서에서 "청와대를 다녀왔다는 김석한 변호사의 요청을 듣고 다스 미국 소송에 들어가는 법률비용을 지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 전 부회장의 진술 역시 김석한 변호사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진술한 전문진술이다. 

    김 전 기획관과 이 전 부회장의 진술은 모두 전문진술이지만,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 전 대통령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1심도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또 이 같은 전문진술을 한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총 9번이나 불출석했다.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도 아냐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2항에 따르면 검찰의 주장대로 전문진술이 증거가 되려면 김 전 기획관과 이 전 부회장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국정농단사건을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에 따라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한 것임이 증명된 때에 한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법원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를 "진술에 허위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진술 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 정황이 있는 경우"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김 전 기획관과 이 전 부회장의 진술은 서로 불일치한다는 점에서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김 전 기획관은 "김석한이 이 전 부회장의 현금지원 의사를 전했다"고 진술한 반면, 이 전 부회장은 "김석한이 김 전 기획관과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의 현금지원 요구 의사를 전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 측도 김 전 기획관과 이 전 부회장의 상반된 진술을 들어 두 사람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김석한을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어떤 의도로 돈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김 전 기획관과 이 전 부회장의 진술을 통해 추정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문제는 이 두 사람의 진술이 상당히 불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B 측 "국제 사법공조로 김석한 조사해야"

    이 전 대통령 측은 결국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서는 미국과 국제 사법공조를 통한 김석한 변호사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호인단은 항소심 재판에서도 "핵심 증인 두 사람이 모두 김석한 변호사에게 들은 말을 진술하고 있는데, 정작 김석한을 조사하지 않고 선고를 내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 측은 김 전 기획관의 진술에 대해 증거동의를 철회했고, 그를 증인신청했음에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진술은 재전문진술(법정증언이 없는 상태의 전문진술)로도 볼 수 있다"며 "이 경우는 증거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더 까다로운 입증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증거채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