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일개 실무진 군인들 개인 주장" 폄훼… 알고 보니 '미국 핵전략' 실무기획자들
  • ▲ EU 회원국의 핵무기 보유 및 배치 지도. ⓒEU 대외관계분과 홈페이지 캡쳐.
    ▲ EU 회원국의 핵무기 보유 및 배치 지도. ⓒEU 대외관계분과 홈페이지 캡쳐.
    최근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이 짧은 보고서 하나를 내놨다. 제목은 ‘21세기 핵 억제력: 2018 핵태세검토보고서 작전화’로 6쪽 분량이다. 지난 30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고서 내용을 간략하게 전한 뒤 국내 언론도 관심을 가졌다. 보고서는 “북한을 억제하려면 일본·한국과 전술핵무기를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저자들은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실패를 겪은 뒤 앞으로의 전쟁도 과거의 전쟁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마지노선을 구축했지만,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재앙 수준의 실패를 겪었다”며 미국도 핵전략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도 핵보유국…새로운 억제 개념 필요”

    이들은 2018년 미국 국방부가 내놓은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보면 냉전이 끝난 뒤인 1994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핵전략을 만들다 보니 개념적 사고가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이제는 러시아와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핵전쟁 대상’으로 부상했다면서, 동아시아 동맹국 방어를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비슷한 핵억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유사시 특별히 선택한 한국·일본 같은 아시아 동맹국들과 비전략적 핵능력을 미국의 관리 아래 공유하는 새 개념을 강력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ATO식 핵억제 방안’이란 미국이 핵무기가 없는 이탈리아·터키·독일·벨기에·네델란드와 전술핵무기를 공유하기로 한 체제를 말한다. 미국은 전술핵무기 240기를 이탈리아와 터키에 각각 90기, 독일·벨기에·네덜란드에 각 20기씩 나눠 보관 중이다. 유사시 해당국 정부는 미국과 사전 합의에 따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자국에 보관 중인 전술핵무기 사용을 요청한다. 그리고 자국 공군기에 미군 전술핵무기를 탑재하고 공격에 나선다.

    저자들은 보고서에서 NATO식 핵전력 공유가 동맹국들이 NPT 체제를 준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 뒤 “다만 한국과 일본은 정치·군사적 요소를 고려해 이들 국가가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직접 사용하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국방부 관계자들은 30일 “해당 보고서는 현역 군인들이 작성한 것은 맞지만 일개 실무진급 군인들의 개인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 내용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이런 내용을 현재 검토하지는 않고 있다”며 이 보고서의 주장을 낮춰 봤다.
  • ▲ 미공군이 F-35A 스텔스 전투기에 신형 B61-12 전술핵무기를 탑재·운용하는 시험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미공군 공개사진.
    ▲ 미공군이 F-35A 스텔스 전투기에 신형 B61-12 전술핵무기를 탑재·운용하는 시험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미공군 공개사진.
    국방부 관계자들 “실무진급 군인의 개인 의견”

    그러나 국방부가 ‘실무진급 군인들’이라고 지칭한 저자들이 근무 중인 부서는 핵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고서 저자는 라이언 코트 미군전략사령부 기획장교(육군 소령), 카를로스 버세이브 전략사령부 예하 국가공중수송작전센터 전략작전장교(공군 소령), 달튼 클라크 통합정보작전센터 교차기능통합팀장(해군 중령), 데렉 디벨로 합동특전사령부 지원작전장교(육군 소령)다.

    미군전략사령부는 9대 통합사령부 가운데 하나로 군사용 정찰위성 운용을 포함한 우주작전, 정보전, 미군의 범지구적 지휘통제·첩보·감시·정찰(C4ISR)체계 지원, 탄도미사일 방어, 핵무기를 주력으로 한 범지구적 타격작전 및 전략적 억제, 대량살상무기 운용이 임무다.

    국가공중수송작전센터는 전략사령부 예하부대로 전략적 억제, 범지구적 타격 및 관련 작전, 국방지구정보망 운용 등을 맡은 곳이다.

    통합정보작전센터는 합동참모본부 예하부대로 전시 다양한 규모의 전투와 관련된 정보를 융합,평가해 지휘부에 제공하는 곳이라고 한다. 동맹국 부대와 합동작전 때도 활약한다. 국방장관과 합참은 물론 다른 정부기관들을 지원하는 업무도 맡는다.

    합동특전사령부는 정규전 때 투입되는 일반적인 특수부대와 달리 전시와 평시를 가리지 않고 정보기관과 함께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를 지휘하는 사령부다. 우리가 흔히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는 특수부대들이 이 사령부 소속이다.

    신종우 국장 “미국, 전술핵무기 사용 전략 추진”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의 신종우 사무국장은 “이 보고서가 무슨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는 거냐. 국방부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우려했다. 그는 “미군이 국방대학이라는 기관을 통해 보고서를 내놓고, 관영매체를 통해 퍼뜨린 점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며 “미국의 핵전략은 과거와 달리 ‘핵전력 사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국장은 “미국은 21세기 들어 적성국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러시아나 중국은 물론 북한이나 이란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전략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미국은 여기에 맞서 ‘실제 사용 가능한 전술핵무기’를 개발해 배치함으로써 적대세력들을 압박한다는 것이 신 국장의 설명이다.

    신 국장은 보고서 저자들의 소속 등을 들은 뒤 “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미국의 핵전략을 기획하고, 시간이 지나면 미군 수뇌부에 올라갈 인재들”이라며 “이들의 말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들이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NATO 핵 공유는 한국과 일본에 맞지 않지만, 이를 참고한 핵억제 전략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