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문가 제프리 루이스 "볼턴, 트럼프의 북핵동결에 반발하다 몽골로 쫓겨간 것"
  • ▲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보여준 행동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핵동결’을 해보려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연구소 소장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트럼프가 생각하는 핵동결은 과거 클린턴 정부때부터 부시 정부때에도 시도됐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이 같은 주장을 폈다.

    루이스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것은 역사적인 이벤트지만 그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보다는 덜 중요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주장의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김정은과 50분 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 공식적으로 북한 비핵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비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 점이었다.

    루이스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만난 뒤 기자들에게 “대북제재는 유지되고 있지만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한 일을 지적하며, 북한이 제한적인 비핵화 조치만 하더라도 미국이 상응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비핵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핵동결’ 대신 ‘핵 무력화’라는 단어를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루이스 소장은 또한 지난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비난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2021년 1월까지 해야 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강조했던 일을 거론한 뒤, 최근 판문점에서의 상황을 비교하며 “이는 북한에게 신속한 비핵화를 요구했던 미국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루이스 소장은 “물론 트럼프 정부의 그 어떤 관계자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부정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폭탄에 대한 우려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느낌은 지우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판문점 미북 정상 간 만남 이후 미국에서 북한 핵동결 또는 점진적인 비핵화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오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보인 반응에 주목했다. 볼턴 보좌관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의 어떤 사람도 그런 말(북한 핵동결)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 ▲ 굳은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는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굳은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는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루이스 소장은 “볼튼의 분노는 이해가 되지만 그는 결국 몽골로 쫓겨났고, (판문점에는) 터커 칼슨(폭스뉴스의 유명 진행자)이 손님처럼 등장했다”며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목은 ‘핵동결’이라는 단어가, 최소한 당신이 공화당원이라면 북한과의 협상에서 가장 더러운 단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북한 핵동결을 ‘가장 더러운 단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전례 때문이었다. 1994년 당시 클린턴 정부가 북한의 ‘핵동결’을 추구하며 협상을 벌일 때 공화당은 “북한이 최소한 한두 개의 핵폭탄을 만들 원료를 남겨 놓았을 것”이라고 반대했고, 볼턴도 참여했던 부시 정부 때의 북한 비핵화 협상은 더 나은 결과를 장담했지만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부시 정부는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동결’을 추진했다. 이때 정부 관료들은 ‘해체’라는 말 대신 ‘무력화’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해체’처럼 들리지만 ‘동결’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볼턴이 오랫동안 비판해 온 접근방식을 트럼프가 고려하는 것처럼 보이니 그가 얼마나 열이 받았을지 상상해 보라”면서 “20~30년 동안 볼턴이 북한에 관해 주장한 내용의 저주”라고 주장했다.

    루이스 소장은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모두가 안다”면서도 “그렇다고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중국이 수소폭탄 개발과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을 찾아갔던 역사를 언급했다.

    그는 “과거 닉슨이 중국으로 날아가 마오쩌둥·저우언라이 등 공산주의자들과 핵무기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은 비핵화 협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핵전쟁을 막기 위해서였다”면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가 아니라 새로운 안보체계를 세우기 위해 북한과 협상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루이스 소장은 트럼프 정부가 ‘북한 핵동결’을 목표로 한다면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물론 트럼프가 상상하는, 야심찬 아젠다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핵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꽤나 좋은 출발”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