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민간의 아이디어일 뿐, 공동사업 추진 없다"… 전문가들 "내용 자체가 국가 정체성 부정"
  • ▲ 국방부가 연구용역을 준 보고서의 결론 및 제언 부분. 남북이 함께 추진할 수 있는 6.25전쟁 70주년 기념 행사를 언급했다. ⓒ6.25전쟁 70주년 기념행사 관련 국방부 발주 용역보고서.
    ▲ 국방부가 연구용역을 준 보고서의 결론 및 제언 부분. 남북이 함께 추진할 수 있는 6.25전쟁 70주년 기념 행사를 언급했다. ⓒ6.25전쟁 70주년 기념행사 관련 국방부 발주 용역보고서.
    “국방부가 내년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을 북한과 공동 추진할 계획”이라는 <조선일보>의 4일 보도와 관련해 국방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과 별개로 국방부가 연구용역을 준 보고서에 "6·25전쟁 기념행사를 남북이 함께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내용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모 언론에서 ‘6·25전쟁 7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한 사업을 북한과 함께 추진한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북한과 공동 사업 추진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을 두고 민간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용역을 맡긴 것”이라며 “문제의 아이디어는 용역보고서의 주요 부분이 아니라 마지막에 ‘이런 것도 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개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최 대변인은 “해당 기사에 나온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은 민간기관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불과할 뿐”이라며 “이 내용이 혹여 왜곡돼 보도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한반도 종전 기류, 촛불혁명서 비롯된 국민 의지 반영”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는 ‘온-나라 정책연구’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온-나라 정책연구’는 정부 부처가 외부에 맡기는 연구용역 정보를 공개하는 곳이다.

    ‘온-나라 정책연구’에 게재된 문제의 연구결과 최종보고서 중 파워포인트 작성본의 결론 및 제언에는 “대내적으로는 남과 북이 6·25전쟁 국방사업을 공동으로 참여 및 개최할 수 있는 방안과, 대외적으로는 참전 우방국과 범세계적 평화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을 통해 6·25전쟁 국방사업이 대내외적으로 평화를 향한 도약임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음”이라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같은 보고서의 워드프로세서 판은 좀 더 상세한 내용을 담았다. 그 중에서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을 기획할 때 고려했다는 ‘환경분석 시사점’은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현재 한반도 상황 그대로였다.

    “새 정부 이후 한반도 종전선언 및 항구적 평화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냉전시대에서 평화시대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함”이라는 주장과 “80% 이상의 국민이 판문점선언을 지지하며 평화체제를 원하는 국민들이 분단체제의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촛불혁명에서 비롯된,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국민들의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또한 “세계는 이제 개별국가를 넘어 민족주의를 지양하고,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교류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 ▲ 올해 열린 6.25전쟁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 ⓒ뉴데일리 DB.
    ▲ 올해 열린 6.25전쟁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 ⓒ뉴데일리 DB.
    보고서는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 기획을 위해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과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2010년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 2018년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2018년 ‘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 100주년’, 201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 미국의 ‘메모리얼데이(현충일에 해당)’, 호주 ‘안작데이’, 2015년 ‘러시아 전승기념일 70주년’, 같은 해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등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가 언급한 국내외 행사와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의 성격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들  사업에서 나타난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등은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홍관희 성균관대 초빙교수 “보고서 주장 수용하는 건 국가 정체성 부정”


    국방부가 발주한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 연구용역' 보고서에 "북한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소식에 적잖은 국민이 분노했다. 특히 통일 전문가들의 비판은 거셌다.

    홍관희 성균관대 정치학과 초빙교수는 “국방부 연구용역에서 ‘북한과 6·25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제언이 나오고, 이를 그대로 둔 것은 국가 수호의 임무를 지닌 세력이 국가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셈”이라며 “참 기가 막힌다”고 한탄했다.

    홍 교수는 “6·25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을 등에 업고 한국을 불법침공해 일으킨 전면전으로, 수백만의 사상자가 생겼지 않으냐”며 “그런 적대세력과 침공당한 전쟁을 기념하는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한다니, 정상적인 국가와 정부라면 저런 연구용역을 맡긴 걸 징계위에 회부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남북한 사이는 지금도 국제법적으로는 교전이 진행 중인 것이나 다름없는 휴전 상태이고, 그 와중에서도 북한은 핵무기니 탄도미사일이니 개발하면서 군사력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면서 “6·25전쟁은 우리가 피해자인데 가해자인 북한과 함께 그 피해를 되새기는 사업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 용역 보고서를 받은 뒤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활용결과 보고서. ⓒ행안부 운영 '온-나라 정책연구' 게재 자료 캡쳐.
    ▲ 용역 보고서를 받은 뒤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활용결과 보고서. ⓒ행안부 운영 '온-나라 정책연구' 게재 자료 캡쳐.
    국방부 보고 “6·25 기념사업과 연계 타당성 분석에 적극 활용”

    이 연구용역은 민간업체 ‘유니원 커뮤니케이션즈’가 수행기관을, H대 황 모 교수가 수행연구원을 맡아 3월7일부터 6월9일까지 진행했다. 연구용역비는 1929만4000원으로, 수의계약이었다. 발주처는 국방부 인사복지실 인사기획관 병영정책과다.

    국방부 관계자는 4일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은 사업단이 진행하는데 아직 결성도 안 된 상태”라며 “유니원의 보고서는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용역을 맡긴, 단순 참조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행안부에 제출한 용역평가 보고서는 달랐다. 국방부는 이 보고서에 대해 “6·25전쟁을 주제로 한, 10년 주기의 범정부 차원 대국민 사업 추진을 위해 국민 의견을 반영하고, 시대에 맞는 사업을 발굴, 이를 정부예산에 반영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평가를 내놨다.

    국방부는 또 이 보고서를 “6·25전쟁 70주년 국방부 사업 업무와의 연계 타당성 분석에 적극 활용하고, 2020년 정부예산 반영 정책참고자료로써 활용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 부처가 용역을 맡기면 착수보고와 중간보고, 최종보고를 하며, 담당자가 내용을 감수한다”며 “(유니원 커뮤니케이션즈의) 보고서 내용대로 6·25전쟁 70주년 사업의 윤곽이 잡힌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