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임수경, 이정희 종북 표현" 잇달아 무죄… 경멸적 표현은 모욕죄 가능성
  • ▲ 최근 대법원에서 임수경 전 의원에 대해 '종북의 상징'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인격권 침해는 아니'라고 판단했다.ⓒ정상윤 기자
    ▲ 최근 대법원에서 임수경 전 의원에 대해 '종북의 상징'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인격권 침해는 아니'라고 판단했다.ⓒ정상윤 기자
    임수경 전 의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을 종북으로 표현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연이어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종북 표현을 한 행위만으로 상대에게 경멸적 인신공격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좌파 성향’의 현 정부 고위공직자에 대해 ‘종북’ 등의 표현을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법조계는 “의견표명은 명예훼손이 되지 않지만, 경멸적 표현 등은 모욕죄가 가능하다”고 봤다.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의사표시는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13일 임수경 전 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사건(2014다220798)에 대해 “종북이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등 누리는 만큼 비판 받아들여야” 

    앞서 박상은 전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 7월 ‘천안함 46용사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백령도 청정해역에 종북의 상징인 임 전 의원’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에 임 전 의원은 인격권 침해, 명예훼손 등을 주장하며 박 전 의원에게 2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이렇다. ‘종북의 상징’이라는 용어가 모욕적 언사에 해당할 수는 있으나, 정치인 등 공적 인물이 갖는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비판적 표현이 악의적이거나 상당성을 잃었다고 볼 정도가 아니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며 “특히 국회의원은 면책특권 등을 보장받고 발언의 자유도 누리는 만큼,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 등에 대한 비판도 폭넓게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 이 전 대표 부부가 보수논객 변희재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4다61654)에서 ‘종북’ 표현 사용 등을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 역시 지난 4월 이 지사가 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6다278166)에서 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두 재판부 모두 ‘정치적 논쟁이나 의견표명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의견표명은 명예훼손 아냐”

    현행법상 명예훼손죄(형법 307~309조)는 ‘공연한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 등을 규정한다. 모욕죄(동법 311조)는 사실 적시에 의하지 않고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가 처벌받는다. 가령 사실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가치판단이 개입된 욕설을 내뱉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 ▲ 임수경 전 의원.ⓒ뉴시스
    ▲ 임수경 전 의원.ⓒ뉴시스
    그렇다면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에 대한 의견표명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법조계에서는 명예훼손죄·모욕죄·의견표명 등을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만 ‘공인(公人)’이라는 점을 감안해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검사 출신의 A 변호사는 “기자를 포함한 국민들은 공직자를 감시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 감시가 악의적이거나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은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공직자는 참아야 한다고 법원은 본다”고 설명했다. ‘악의성’에 대해서는 “내용, 표현방식, 기자라면 기자가 취재할 때 사실 확인을 위해 노력했는지, 너무 심한 경솔한 공격은 아닌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한다”며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게 아니라면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A 변호사는 단순히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사실 적시만 명예훼손으로 보기 때문에 의견표명은 명예훼손이 아니고, 상당히 감정적이거나 경멸적 표현이다 싶으면 모욕죄로 간다”면서 “명예훼손과 모욕 가운데가 의견표명”이라고 비유했다. 다만 “제3자의 의견인 양 (기사 등에) 썼지만 표현 전체적인 취지를 보면 그런 사실을 존재한다고 암시하는 식이라면 명예훼손으로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일단 (대통령 등 비하발언은) 명예훼손은 안 된다”며 그 이유로 “대통령 등 비하발언은 사실의 적시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표현 폭넓게 보장해줘야”

    A 변호사는 또 “모욕죄가 성립하는지 검토한다고 할지라도, 모욕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직접 고소가 없는 이상 수사에 착수하기 어렵다”며 “법원은 ‘단순히 불쾌하고 무례한 표현’과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를 구분하기 때문에 반드시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도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김모 변호사는 “정당 등에 관계없이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로 폭넓게 보장해줘야 한다”며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판발언도 마찬가지인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있어도 (비판발언에 대해)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은 구체적 사실 적시로, 시민들이 비판하는 내용이 사실 적시인지 평가인지가 관건”이라며 “이번에 대법원에서 종북 발언을 의견표명으로 본 부분에 대해 동의하고, 만일 이 같은 발언을 막게 되면 정치인을 평가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