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무릎 부상'으로 은퇴… "최고의 위치에서 물러나고파"
  •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 선수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이날 이상화 선수는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기륭 기자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 선수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이날 이상화 선수는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기륭 기자
    한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의 전설이자 '빙상여제'라 불린 이상화(30)가 스케이트화를 벗었다.

    이상화는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은퇴식 및 기자회견을 열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서 무성한 소문을 낳았던 이상화는 그동안 무릎 재활훈련을 해왔으나 원하는 만큼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으면서 은퇴를 결심했다.

    이날 검은색 정장을 입고 등장한 이상화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연신 눈물을 훔치며 기자들을 마주한 그는 "2006년 토리노올림픽 때 막내로 출전해 넘어지지만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이 흘렀다"며 "이제는 선수로서나 여자로서나 많은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17년 전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보유 등 개인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 뒤 지금까지 달려왔다"면서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의 응원 덕분으로 이러한 목표들을 모두 이룰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목표를 다 이뤘어도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에 좋은 모습으로 보답해드리고자 계속 도전을 이어갔지만 항상 무릎이 문제였다"며 "제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못했고, 이런 상태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드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술을 하려고도 했지만 선수로 뛸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재활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고 그동안의 경과를 밝힌 그는 "그럼에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는 육체적 한계에 부닥치면서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이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 ▲ '빙상여제'로 불린 이상화 국가대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은퇴 선언을 했다. ⓒ이기륭 기자
    ▲ '빙상여제'로 불린 이상화 국가대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은퇴 선언을 했다. ⓒ이기륭 기자
    이상화는 "국민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주실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싶다"며 "항상 '빙상여제'라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스케이팅 선수는 오늘 마감하지만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되지만 다른 일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끝으로 "그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고, 받은 사랑과 응원, 평생 잊지 않고 가슴 속에 새기며 살겠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인사를 마무리했다.

    현역 시절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부문 최강자로 군림했던 이상화는 2010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 출전, 한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4년 후 열린 2014 소치올림픽에서도 같은 종목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선 5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이상화가 세운 36초36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 선수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빙상연맹에서 수여한 공로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 선수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빙상연맹에서 수여한 공로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 은퇴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한 걸로 아는데요. 최종적으로 결심한 건 언제인가요?

    ▲원래 3월말로 은퇴식이 잡혀 있었는데요. 막상 은퇴식을 하고 하려니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재활을 병행했어요. 하지만 제 몸 상태는 저만이 잘 알 수 있잖아요. 예전의 몸 상태까지 끌어 올리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 마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은퇴를 결심하게 됐어요.

    -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제 목표만을 위해 달려왔어요. 이제는 여유있게 살면서 어느 누구하고도 경쟁하고 싶지 않아요. 다 내려놓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 국가대표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소치올림픽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선수들에겐 세계신기록을 세우면 일종의 징크스가 있는데요. 직후 열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딴다는 건데요. 저는 두려웠지만 이겨냈고, 올림픽 2연패를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또 깔끔하고 완벽한 레이스여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 올림픽에서 딴 3개의 메달에 각각 어떤 의미를 둘 수 있을까요?

    ▲벤쿠버올림픽은 3위 안에만 들자고 출전했는데 예상외로 깜짝 금메달을 안겨줬어요. 소치올림픽에선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계속해서 그렇게 좋은 성적으로 2연패를 했다는 것 자체에 엄청난 칭찬을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어요. 평창올림픽의 경우엔 앞서 2연패라는 부담을 안고 출전해 메달을 땄던 기억 때문에 3연패라는 타이틀도 괜찮을 거라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부상이 4년 전보다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라 더 긴장됐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평창에서 딴 은메달도 굉장히 예쁘더라고요. 저에겐 다 좋은 메달이에요.

    - 고다이라 나오 선수는 이상화 선수 은퇴 얘기를 듣고 뭐라고 하던가요?

    ▲지난주 제 은퇴 기사를 보더니 농담아니냐며 잘못된 뉴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일단 상황을 보자고 말을 했는데, 오늘 회견을 통해서 나오를 비롯한 저희 선수들에게 은퇴 소식을 알리게 됐네요. 

    -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부모님은 제가 계속 운동하길 원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은퇴 계획도 속상해하실까봐 지난주까지 미리 말씀 못 드렸어요. 오늘 아침에 (부모님으로부터) 잘하고 오라는 말을 듣긴 들었는데,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묻어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서운한데 부모님은 얼마나 서운해하실까요. 이제 겨울이 와도 딸이 경기하는 걸 못보게 됐으니. 앞으로 제가 차차 달래 드려야죠.

    - 앞으로 지도자 생활을 할 계획이 있나요?

    ▲올해부터 은퇴 고민을 했어요. 진작에 결심했다면 평창 때부터 미래 계획을 세웠을 거예요. 그때는 우승을 해야겠다는 목표만 갖고 임했기 때문에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했어요. 이제는 제 목표를 차근차근 세워가야겠죠. 제가 은퇴함으로써 스피드 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아쉬워요. 그래도 지도자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지금의 상황이 다 정리된 후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럴 의향은 있어요.

    - 은퇴 결정을 하고 나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겨울에 성적을 내기 위해선 여름 훈련을 열심히 해야하는데요. 겨울엔 그냥 성적을 내면 그만이지만 여름에는 훈련하는 과정이 힘들죠.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점이 많아서 더운 날씨만 접하면 그때 운동했던 생각들이 많이 나요. 비가 오면, '훈련 인터벌을 주기 위해 비가 내리는 구나'라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들이 아쉽죠.

    - 밴쿠버올림픽 3총사와는 연락을 하나요?

    ▲태범(모태범)이는 다른 종목(경륜)을 하고 있는데요. 가끔 연락을 하면서 지내요. 얘기를 나누다보면 '다른 종목을 해보니 스케이트에 비해서 너무 힘들더라'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은퇴하지만 이 친구들은 아직 현역이기 때문에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요?

    ▲평창올림픽 직후 '레전드'로 남고 싶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단거리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 이런 선수가 있었고, 그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항상 열심히 하고, 안 되는 걸 되게끔 하는 선수였다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 나오 선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ㄴ?

    ▲나오 선수와 인연이 참 많아요. 우정이 깊은 거 같아요. 아직 나오는 현역이잖아요.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하던대로 잘 해주셨으면 해요. 제가 언제 나가노에 놀러가겠다고 했더니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했거든요. 조만간 한 번 찾아갈 계획입니다.

    - 만약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굉장히 불안했을 것 같아요. 만약에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제가 정말 힘들어지겠죠. 무엇보다 준비 과정이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요. 평창 때 이렇게 준비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선수가 아니더라도 갈 생각은 있어요. 해설위원이나 코치 등으로 갈 수도 있겠죠. 둘 중의 하나로는 참가하고 싶어요.

    - 나오 선수 외에 기억나는 라이벌이 있다면?

    ▲2015-2016시즌에 중국 선수가 500m 강자로 떠올랐어요. 그래서 이번엔 한중매치라는 타이틀이 붙었는데요. 그때에는 지금처럼 제가 2등이 아니라 번갈아 가면서 1~2등을 다툴 때였어요. 그래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하자고 목표를 세우고 경기에 임했는데 마지막엔 제가 우승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한중전과 이번 한일전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거 같아요.

    -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참 많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대표가 되고 금메달을 따기까지 도와주신 코치님들이 굉장히 많이 계신데요. 그 중에서도 평창까지 함께 간 캐빈 크로켓 코치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요. 그래서 캐나다도 한 번 가고, 한국에 계신 많은 코치님들에게도 인사를 드리면서 고마움을 전달할 예정이에요.

    - 본인이 세운 세계신기록이 언제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수립한 세계신기록이 영원히 안깨졌으면 좋겠어요. (웃음) 하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잖아요. 선수들 기량을 보니 많이 올라왔더라고요. 이제 36초대 진입도 쉬워졌고요. 그래도 1년 정도는 제 기록이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 선수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선수생활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이 제일 힘들었어요. 어떻게 주변에 신경을 안 쓰고 제 일에만 매진하겠어요. 많이 힘들었고 항상 부담이 많이 왔어요. 꼭 1등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계속 식단 조절도 해야했고. 남들 하나할 때 저는 둘을 해야했고. 모든 걸 자제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제가 혼자해야 한다는 점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 혹시 포스트 이상화로 눈여겨 본 후배 선수가 있나요?

    ▲저는 김민선 선수를 추천해주고 싶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아주 투철한 선수예요. 저보다 12살 어린 친구가 언니에게 떨지말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너무 대견스러웠어요. 또 신체조건을 잘 갖추고 있더라고요. 500m뿐 아니라 1000m까지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500m 최강자로 성장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 평범한 일상 중에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게 뭔가요?

    ▲저희는 하루에 운동(훈련)을 4번했는데 그게 참 힘들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운동을 하고. 또 9시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오후 3시가 되면 운동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내려 놓고 싶어요. 이제는 산책도 하고 여유롭게 그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를 내려놓고 '어떻게 제 2의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 하고 구체적으로 고민을 할 겁니다.

    - 선수 생활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요?

    ▲평창올림픽 직전이 제일 힘들었어요. 링크장으로 나가면 선수들마다 받는 느낌이라는 게 있는데요. 평창으로 넘어가기 전에 독일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고 왔는데요. 막상 도착하니 느낌이 조금 다르더라고요. '정말 메달을 아예 못 따면 어떡하지?' 이런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잠을 편히 자 보고도 싶었지만 이런 '1등을 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편히 자질 못했어요. 저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평창올림픽이었습니다.

    - 은퇴한 선수들이 간혹 다른 종목에 도전하기도 하는데요. 관심이 가는 다른 종목이 있나요?

    ▲저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일 때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은퇴를 결정했고요. 무릎 부상이 커서 다른 운동을 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하고 몸 상태를 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스포츠를 찾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일반인으로서 가장 뭘 하고 싶으세요?

    ▲오늘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면 잠을 편히 자 보고 싶습니다. 평창올림픽 이후 알람을 끄고 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사실 며칠 만에 다시 알람을 켰어요. 다음 운동(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은퇴 발표를 했기 때문에 선수 이상화가 아닌 일반인 이상화로 돌아가서 그야말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살고 싶어요.

    - 최고 선수가 될 수 있는 덕목을 한 가지 꼽아본다면?

    ▲힘들다고 포기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데 저는 '쟤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라는 마인드로 했어요. 정말 안되는 걸 되게끔 운동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링크장에서 사라지지만 스피드 스케이팅은 남아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변함없이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