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움트는 봄처럼 다시 시작하고파… 평생 노래하는 가수 될 것"
  •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세상에 수많은 히트곡들이 있지만 첫 소절부터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는 많지 않다. 1982년 제6회 MBC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차지한 '잃어버린 우산'이란 노래는, 시작부터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그런 노래였다. 전형적인 마이너 발라드 곡으로, 잔잔하게 시작하다 후렴부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80년대 한국형 팝발라드의 전형을 제시한 노래이기도 하다. 이후 이 노래의 스케일을 차용한 수많은 발라드 명곡들이 탄생해 가요계의 판도를 바꿨다.

    이 곡을 부른 가수는 아직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새내기 대학생이었다. 당시 한양대 작곡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우순실(57)은 이 노래 하나로 전국민이 주목하는 스타가 됐다. 풋풋하고 앳된 외모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노래를 잘했다. 세련된 창법은 아니었지만 삶의 풍파를 거친 듯한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평론가들은 '우순실의 목소리에는 스무살의 감성을 뛰어넘는 묵직함이 느껴진다'며 '모처럼 만에 천재 가수가 탄생했다'는 호평을 내놨다. 당시 그는 어떤 심정과 감성으로 이 노래를 불렀을까?

    "원래부터 애늙은이 같은 성격이 좀 있었어요.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그러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간접 경험을 많이 했죠. 마치 내가 겪었던 것처럼 상상해서…. 사실 삶의 희로애락을 제대로 모르고서 어떻게 그걸 표현할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제가 부르는 노래가 진짜 내 노래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 약관의 나이에 원숙미가 느껴지는 곡을 만들어낸 오주은·오주연 자매도 훌륭했지만, 삶의 애환이 묻어있는 시적인 가사를 마치 본인의 이야기처럼 풀어낸 우순실의 곡소화력은 정말 대단했다.

    84년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따로또같이' 2집 음반과 옴니버스 음반 '젊은이의 노래'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그는 88년 이장희와 손을 잡고 '꼬깃꼬깃해진 편지'를 타이틀로 내세운 2집을 발매했다.

    전반적으로 성인가요에 가까워진 이 앨범은 우순실의 보컬 역량이 여실히 드러난 명반이다. 탁월한 보컬 실력으로 이선희, 이승환, 심수봉 음반의 코러스로도 참여한 우순실은 '쌕쌕', '환타', '코카콜라 라이트' 등 당시 인기가 높았던 CM송도 도맡아 불렀다.
  • 이렇게 다양한 활동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우순실은 91년 결혼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96년과 99년에도 신보를 내긴 했지만 TV 출연과 공연 활동을 대폭 줄이면서 우순실은 어느새 잊혀진 가수가 되고 말았다. 무엇이 그의 발목을 잡았을까.

    "그때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이를 키우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는 게 제가 해야할 일이었고 제가 전념해야 할 일이었어요. 물론 TV를 볼 때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 무대인데….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답니다. 그래도 전 행복했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껴지는 행복함이나 만족감이란, 아이를 키워 본 엄마들만 알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살면서 '헌신'과 '인내'가 아로새겨진 그의 마음판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졌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몇번이고 좌절했을 숱한 위기 속에서도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던가. 인고의 세월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에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을 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 "전영록 씨와 높은음자리의 김장수 씨가 하는 콘서트 리허설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전영록 씨께서 요즘 한창 노래를 만들고 있는데 마땅히 곡을 줄 만한 가수를 못찾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아무래도 제가 적임자 같다며 저한테 음반 취입을 제안해오셨어요."

    당시 전영록이 우순실에게 들려줬던 노래는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가 아닌 다른 노래였다. 당초 우순실은 3~4곡만 녹음해 싱글앨범을 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녹음실에서 우순실을 테스트해보던 전영록은 아껴뒀던 다른 곡들까지 불러 보도록 했다. 결국 녹음한 곡들이 열 몇곡으로 늘어났다. 나중에 앨범에 담을 곡을 추리면서 애당초 전영록이 염두에 뒀던 곡이 빠지고 대신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됐다.

    "전영록 선배님의 도움으로 무려 14년 만에 정규앨범을 내게 됐는데요. 이 앨범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서를 표현한 앨범이에요. 이번 콘서트는 지금 절기에 맞춰 모든 생명이 소생하는, 그런 봄에 관한 노래 위주로 꾸며봤어요. 다시 도약하고 재시작하자는 의미를 담으려고 했어요."
  • 전영록 사단에 합류한 우순실은 26일 서울 마리나에서 개최한 아투스(ATUS) 릴레이 콘서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국 투어에 나설 예정이다. 오는 5월 구미 공연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전국 투어에는 전영록, 김범룡, 김장수, 한서경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과 함께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무더운 여름철에 전국을 돌아야 하는 만큼 각별한 체력 관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겸사겸사 건강 유지 비결을 물었더니 예사롭지 않은 답변이 나왔다. '63년생 우순실'을 지탱하는 힘은 단전에서부터 나오는 '호흡'에 있었다.

    "2004년부터 기체조를 시작했어요. 남궁옥분 씨의 소개로 입문했는데 나중엔 김범룡 씨에게 제가 소개를 시켜줬죠. 김범룡 씨가 한동안 스트레스가 심해 목소리가 안 나온 적이 있었는데요. 기체조를 하면서 다시 소리가 나왔어요. 정확히 말하면 '절체조'인데요. 합장하는 모습을 본 따 만든 동작이 있어요. 온 몸의 관절을 다 써야 하는 체조인데요. 그러면서 호흡법으로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있죠."
  • 이밖에 대학 시절 한 '인간문화재'로부터 국악을 사사한 것이 우순실의 목소리를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조선시대 여류예술가 황진이가 불렀던 여창가곡(女唱歌曲)을 전수 받은 그는 '맑은 탁성'으로 고음에서도 좀처럼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대중가요에 '국악 창법'을 섞은 우순실은 조만간 국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색다른 앨범도 낼 계획이다.

    "여창가곡과는 조금 다르지만 국악 스타일의 곡을 녹음 중이에요. 앞으로 공연을 할 때마다 관객 여러분께 선보일 계획입니다."

    우순실의 목표는 단 하나 뿐이다. 그저 오래도록 건강하게 노래하는 것. 자신의 사전에 '은퇴'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그는 "제 노래를 듣고 마음이 정화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만큼 가슴 벅찬 일도 없을 것"이라며 모든 사람에게 '힐링'이 되는 노래를 평생 부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 다음은 일문일답.

    - 주변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우순실 씨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가수니까요. 늘 노래를 하면서 지냈는데요. 브라운관으로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죠. 그리고 사실은 저희가 나갈만한 방송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띄엄띄엄 나가다보니까 제가 활동을 안하나보다라고 생각들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마치 눈에서 멀어지면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처럼. 저는 라이브 카페 공연도 많이 하고 있고요. 지방 행사라든가 다양한 곳에서 계속 노래를 불러왔어요.

    - 저는 사실 우순실 씨가 99년까지만 정규 앨범을 내셨던 걸로 알았는데요. 2003년, 2004년, 2007년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셨더라고요. 지난해 발매한 앨범이 그러면 정확히 몇집인가요?

    ▲정규앨범으로는 5집을 냈고요. 그 사이사이에 싱글을 내서 총 9장 발매했어요.

    - 82년도에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하고 84년도에 정규 1집을 발매하고 정식으로 데뷔하셨죠? 그러다가 91년도에 결혼과 동시에 가수 활동이 좀 뜸해지셨어요. 물론 간간이 앨범은 내셨지만 예전처럼 활발한 활동은 보기가 어려웠는데요. 아마도 가사와 육아에 좀 더 신경을 쓰시면서 활동을 중단하셨던 걸로 보입니다만. 휴지기 동안 무대가 많이 그리우셨겠어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 무대인데…. TV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래도 아이를 키우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는 게 그 때 당시에는 제가 해야할 일이고 제가 전념해야할 일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껴지는 행복함이나 만족감도 굉장히 컸어요. 이런 감정은 엄마들만 알 수 있지 않을까요?

    -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성들이 컴백할 때 자양분이 되지는 않았나요?

    ▲그렇죠. 가수는 사람들의 삶을 노래로 멜로디로 표현해서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삶의 희로애락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걸 표현할 수 있겠어요. 가수라면 안좋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다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걸 저는 실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됐죠.

    - 가수 초년병 시절의 감성과 지금 감성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죠?

    ▲그때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느낌을 노래로 불렀다면 지금은 직접 몸으로 체득한 걸 노래로 풀어내고 있으니, 저 진솔해지고 진짜 내 노래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가수로서의 전달력과 이해력은 더 좋아졌을 거예요.

    - 작년에 전영록 씨의 곡을 받고 신보를 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 음반 시장도 불황이고, 새 앨범을 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걱정은 없으셨나요?

    ▲사람이 뭔가를 계획한다고 해서 계획한 대로 다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요? 늘 마음 속으로는 '앨범을 내고 싶다. 새로운 노래로 여러분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있었어요.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거죠.

    그러던 차에 전영록 씨와 높은음자리의 김장수 씨가 하는 콘서트 리허설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전영록 씨께서 새로 쓴 곡을 줄만한 가수를 못찾았는데 아무래도 제가 적임자 같다며 저한테 음반 취입을 제안해오셨어요.

    당시 전영록 씨가 들려주신 노래는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가 아닌 다른 노래였어요. 그 노래를 들려주시면서 저한테 너무 잘 맞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죠. 저는 잠시 고민하다 '네 영광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전영록 씨를 따라 녹음실로 갔어요.

    원래는 한 3~4곡만 녹음해 싱글앨범으로 내려고 했는데요. 전영록 씨께서 녹음 과정에 제가 하는 표현을 좋게 느끼셨는지 계속 다른 노래도 해보자고 권해주셨어요. 그렇게 하다보니 녹음한 곡들이 열 몇곡으로 늘어났는데요. 이걸 추리고 추려서 7곡만 5집 앨범에 담았어요.

    - 이번 콘서트 콘셉트가 아주 의미심장하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설명을 좀 해주시죠.

    ▲콘서트 얘기에 앞서 제 5집 앨범 소개를 해드리자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표현한 앨범이에요. 어찌보면 제 인생의 사계절을 담았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이번 콘서트는 지금 절기에 맞춰 모든 생명이 소생하는, 그런 봄에 관한 노래 위주로 꾸며봤어요. 다시 도약하고 재시직하자는 의미를 담으려고 했어요.

    저는 겨울에 벌거벗은 나목을 보면 가슴이 벅차올라요. '너는 그 안에 생명을 잉태하고 있으면서 그 모진 눈보라와 추위를 다 참아내고 꿋꿋이 버티고 있구나'. 그리고 마침내 그 안에서 보일듯 말듯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가슴 벅차고 눈물도 나고 그래요.

    예전에는 가을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 봄이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아요. 이번 콘서트에선 그동안 제 안에 쌓여있었던, 억눌렸던 것들을 풀어내자는 의미도 있어요. 오시는 분들도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이 다 풀어지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해요.

    - 이후에도 계속 콘서트 일정이 있으시죠?

    ▲오는 6월에 서울 광화문에서 아투스 릴레이콘서트가 열리는데요. 저는 이틀간 단독 공연을 가질 예정이에요. 또 전국 콘서트는 5월부터 구미를 시작으로 진행할 계획인데요. 전영록 씨, 김범룡 씨, 높은음자리의 김장수 씨, 한서경 씨 같은 분들과 합동공연을 펼칠 예정입니다.

    - 화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미모가 여전하신데요. 프로필엔 63년생으로 나와 있는데요. 겉으로 보기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미모나 건강 유지 비결이 있으시면 좀 알려주세요. 또 목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아까, 전영록 씨 보고 '미친동안'이라고 하셨죠? 그럼 저는 '미친동안2'에요. 농담입니다. (웃음) 노래하시는 분들은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을 다 토해내는 분들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잘 안쌓이는 편이에요. 그렇게 정화가 되니 '동안'이라는 소리를 좀 듣는 것 같아요.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주변에 덩치는 산만한 남자 후배들이 있는데요. 그런 친구들이 저한테 '누나누나'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봐요. (웃음)

    저는 오래오래 노래하고 싶어요. 은퇴 같은 거 하지 않고요. 저도 몸 관리, 목 관리, 마음 관리를 잘해서 오래오래 여러분과 함께 노래하고, 같이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좀 더 구체적으로 건강을 지키는 노하우를 알려주신다면?

    ▲저는 기체조를 오래했어요. 요가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남궁옥분 씨의 소개로 2004년부터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절체조'라고, 절에서 하는 합장을 응용한 동작이 있어요. 그렇게 몸관절을 다 쓰는 체조를 하고 있고요. 호흡법을 통해서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 한양대 작곡과를 다니시다가 돌연 자퇴를 하고 다른 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하셨잖아요?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으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그런 저를 잘 알고 계셨던 큰 형부가 '우리 처제가 대학가요제에 나가면 좋겠다'며 원서를 구해오셨어요. 그래서 원서를 들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같은 과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방학 동안에 곡을 만들었죠. 그게 바로 '잃어버린 우산'이에요. 곡을 쓴 친구는 지금도 작곡가 겸 보컬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오주연 씨예요.

    당시 학교에서는 클래식 전공자가 대중음악을 하는 걸 별로 안좋아했어요. 학교가 반대하는데 출전을 강행하면 자퇴를 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굉장히 보수적이었죠. 그때 타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어떤 분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본선에 진출하고 바로 자퇴서를 냈는데요. 집에서 난리가 났죠. 특히 어머니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제가 고집을 부렸죠. 그때는 가수가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 故 유재하 씨도 한양대 작곡과 출신이죠?

    ▲같은 과 동기였어요. 키가 크고 머리는 부슬부슬한, 약간 파마기가 있는 머리였는데요. 술을 좋아했고, 비는 시간이 있으면 피아노 앞에 앉아 팝송을 부르곤 했어요. 되게 멋진 친구였죠. 말수가 좀 적고 느릿느릿한 편이었는데, 굉장히 착하고 매력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 그러면 대학가요제에 출전할 때 유재하 씨에게 곡을 받을 수도 있지 않았나요?

    ▲아니요. 그 친구가 이런 쪽에 관심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그 친구는 뒤에서 활동했거든요. 학교에서는 전혀 내색을 안했어요. 그때 위대한 탄생 활동도 하고, 가수들과 활발하게 교류를 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죠.

    - 작곡과에서 국악과로 전공을 바꾼 이유는?

    ▲어찌보면 숙명 같은 거라고 봐요. 한양대 작곡과 1학년 때 약간 어스름한 저녁이었는데 어떤 여학생이 창을 하는 거예요. '청산리 벽계수야' 이러면서. 그게 시조였는데요. 그 소리가 너무 청아하게 들이고 막 빨려들어갈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학교를 그만뒀는데, 우연한 기회에 인간문화재 선생님을 만나, 그분께 국악을 사사하게 됐어요. 판소리는 아니고요. '여창가곡'이라는 장르예요. 예전에 황진이가 불렀던 노래들이 다 '여창가곡'이지요.

    - 요즘 가요계에선 레트로 스타일, 복고풍이 인기인데요. 추억의 스타들이 컴백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좋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사실 우리 세대들이 들을 만한 노래들은 같은 세대가 불러야 공감이 가거든요. 노래라는 건 굉장히 큰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릴 때 좋아했던 가수나 노래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면 되게 삭막할 것 같아요. 어찌보면 자기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그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가수들이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름으로써 관객분들도 그 시절로 돌아가 젊은 시절 추억을 향유하고 열정도 되살아 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예전 가수분들이 더 많이 활동하셨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면 지금 아이돌 가수들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과연 40년 후에도 지금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그런 면에서 저희들이 생명력은 더 길지 않을까 싶어요.

    - 컴백한 이후 설 자리가 좀 많은 편인가요?  방송활동이나 공연을 할 때 예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요. 지금은 홍보 시스템도 더 많이 열려 있잖아요. 유튜브라든가 SNS를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가 관건인 것 같아요. 유튜브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시는 분이라면 공연장에 안오실 수도 있고, 반대로 유튜브를 통해 접한 가수들의 숨소리를 직접 느끼고 싶어 공연장을 찾는 분들도 계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좋고나쁘고를 따지기는 힘들 것 같아요.

    - 올 한 해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말씀해주시고요. 앞으로 남은 인생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 소극장 공연을 포함해 콘서트를 많이 열어서 여러분과 같이 호흡하고 노래를 자주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잃어버린 우산'이 워낙에 많이 알려졌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이제는 이 노래에 버금가는 노래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우순실'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노래가 나와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은퇴 같은 거 안하고, 오래오래 여러분 앞에서 노래하는 게 제 인생 목표죠.

    또 올해에는 작곡가 박민호 씨와 함께 국악스타일의 싱글앨범도 낼 계획이에요. 지금 한창 녹음 중인 곡이 '달빛창가'라는 노래인데, 여창가곡은 아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국악스타일이에요. 아무튼 지금 준비 중인 국악스타일 노래 중 한 곡을 이번 디너 콘서트에서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정규앨범을 내기 전에 중간중간 싱글앨범을 발표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상윤 기자
    영상 = 이기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