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劉 정체성 갈등 재확인한 연찬회… 국내 정치 넘어 외교·안보 시각차도 여전
  • ▲ 9일 새벽 바른미래당 의원 연찬회가 열린 경기도 연천 쉐르빌호텔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서로를 등지고 뒷풀이를 즐기는 모습. ⓒ정호영 기자
    ▲ 9일 새벽 바른미래당 의원 연찬회가 열린 경기도 연천 쉐르빌호텔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서로를 등지고 뒷풀이를 즐기는 모습. ⓒ정호영 기자
    "유승민 전 대표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합니다. 아까 브리핑한 것으로…"

    8일 바른미래당 의원 연찬회가 열린 경기도 양평 쉐르빌호텔. 자정에 가까운 시각 당 관계자의 이같은 설명과 함께 기자 대기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유 전 대표님께 직접 들어보라"며 퇴장한 김관영 원내대표의 발언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앞서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오후 5시까지 진행된 1차 토론이 끝난 뒤 "토론회를 끝까지 들어보고 떠나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으면 하겠다"고 말했다. 저녁식사 후 재개된 2차 토론은 무려 5시간 가까이 소요된 끝장토론이었다. 기자들은 유 전 대표가 어떤 말을 내놓을지 귀를 쫑긋 세우며 끝까지 기다렸으나 김이 샜다.

    2차 토론 직후 브리핑을 고사한 유 전 대표의 말을 곱씹으면, 5시간 토론을 벌였음에도 적어도 '이견 좁히기'에선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날 그는 '합리적 중도, 개혁적 보수'라는 바른미래당 창당정신을 거론하며 "선명한 개혁 보수 만이 우리가 갈 길" "바른미래당이 보수 재건의 주역이 돼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었다.

    김 원내대표는 2차 토론을 마치고 기자들에게 "유 전 대표가 제안한 '개혁 보수의 당으로서 가야한다'는 주장과, '우리 당이 개혁 보수 세력으로 가기에는 당의 태생상 현실상 무리'라는 주장이 서로 있었다"고 말했다. 연찬회 일정 대부분을 토론에 쏟아부었지만 당 정체성·노선 갈등 문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훗날을 기약했다.

    오후 2시 30분, 호기롭게 연찬회의 막이 오를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시작부터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유 전 대표가 웃으며 악수하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했다.

    으레 자연스럽게 하는 악수였지만 다정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손 대표는 유 전 대표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스킨십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좋은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나 손 대표가 인사말에서 '좌우 통합'을 언급하면서 둘 사이에 맴도는 기운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유 전 대표의 심기를 거스른 발언이었다.

    치열했던 1·2차 난상토론과 함께 하루가 지나고 9일 새벽부터 본격적으로 뒷풀이가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손 대표와 유 전 대표가 보여준 모습은 연찬회 시작 당시 보여줬던 '화기애애한 악수'와는 상반된 모양새였다.

    손 대표와 유 전 대표는 늦은 시간임에도 기자들과 의원, 당직자가 나눠 앉은 테이블을 시시각각 옮겨다니며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였다. 이 시간 만큼은 전날 격화됐던 모든 갈등과 당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잊고 즐기려는 듯했다.

    반면 둘은 같은 테이블에 굳이 앉으려고 하진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서로가 등을 돌리고 마치 상대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불과 한나절 만에 일어난 반전이었다.

    모든 연찬회 일정이 마무리되고 국회로 돌아가기 직전 손 대표는 기자와 당직자들이 탄 버스에 올라 "이번 연찬회는 많은 소득이 있었다"며 "무엇보다도 유승민 의원이 참석해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고, 그가 '나는 당을 만든 사람이다, 떠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안 간다'고 얘기했다"며 긍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기대했던 정체성 이견 봉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결국 연찬회의 성과를 따지자면, 손 대표의 말마따나 유 전 대표가 당장 바른미래당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정도로 요약된다. 그러나 정체성 갈등을 조금도 좁히지 못한 유 전 대표가 향후 손학규·김관영 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는 미지수다. 다만 1차 토론 직후 유 전 대표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당시 "당은 당 지도부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국민께 말씀드릴 의무가 있다"며 "2차 미북정상회담도 있고, 경제도 워낙 어려우니 국가적 일에 대해 필요하면 제 입장 표명은 꼭 하겠다"고 말했다. 당장은 유 전 대표가 당적을 유지하고 지도부의 뜻을 존중은 하겠지만, '개혁 보수'로서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내겠다는 정도로 해석된다.

    외교·안보·대북(對北)관을 엿볼 수 있는 사소한 어휘 선택에서조차 두 인사의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다.

    유 전 대표는 동맹국인 미국을 정전국인 북한 앞에 두는 '미북(美北)정상회담'으로 표현한 반면, 손 대표는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북미(北美)정상회담'이라고 표현했다. 당연히 바른미래당은 대변인 명의 논평 등에서도 '북미'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체성에서 당 지도부와 유 전 대표는 거리감이 짙다.

    유 전 대표와 손 대표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까. 당의 노선을 상징적으로 결정지을 수 있었던 연찬회가 '열린 결말'로 끝나며 정체성 갈등 해소의 길은 한발짝 더 멀어졌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이들의 다음 모습은 '화기애애한 악수'일까, '등 돌린 두 사람'일까. 두 정계 거물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